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빠엄마는 구나 전국구 백일장에 계속 나가고 난 서평을 쓰고 논술이나 자기소개서를 써야 해서 글쓰는 걸 잘 알아야 해서 읽었다. 저자 나민애는 197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화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생들 사이에 ‘갓민애’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2019년에는 우수교원상도 수상했다.
2007년 ‘문학사상’ 신인평론상을 통해 등단한 저자는, ⟪동아일보⟫에서 10여년 동안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주간 시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등 다수가 있다. 책은 많다. 그런데 책에 대한 글, 즉 서평을 가르치는 기관이나 전문 교재는 많지 않다. 많고 적음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셈이다.
괴리는 고뇌를 낳는다. 고뇌가 좋을 리 없다. 저자 역시 괴리 사이의 고뇌를 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고뇌하도록 괴롭힐 생각도 없다. 단언컨대, 저자의 인생에서 서평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전혀 계획하지 않았다. 저자는 대학교에서 ‘어린’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그들은 자신이 스무 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전혀 어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진지한 얼굴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고 한다. ㅋㅋㅋㅋ
저자는 학생들을 종종 ‘어린이’나 ‘아가’라고 부른다. 그들 자존심 상하지 않게 “자, 우리 아가들, 칠판 보세요”하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상당한 지식을 쌓고 온 학생들이고 저자보다 영어도 유창하지만, 이들은 글쓰기 앞에서 정말로 아기가 된다. 그래서 저자는 처음 만난 날 말한다. “잘난 척은 그만 내려놓고, 첫 글자부터 차근차근 ‘걸음마’부터 시작하자.” 그러면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학생들의 글쓰기 걸음마를 한 자 한 자 시작했다. ‘쓰기’란 삼형제 중 막내와 같다. 쓰기는 결코 혼자서, 또는 먼저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쓰기는 ‘콘텐츠’ 라는 이름의 큰형, ‘콘텐츠 이해’라는 이름의 둘째 형 다음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쓰기를 위해서는 읽기와 이해하기를 동반해야 한다. 이 삼형제를 한꺼번에 다루기 가장 좋은 영역이 바로 ‘서평’이다.

‘읽고 이해하고 쓴다’는 3단계란, 고대부터 내려오는 쓰기의 절대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서평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공부와 글쓰기의 접점이다. 저자는 공부와 글쓰기를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의 서평을 받아서 읽고 고쳐주고 다시 가르쳤다. 학생들의 서평, 영화평, 감상평을 읽고 첨삭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아이들이 무엇을 어려워하고, 무엇을 어려워하고, 무엇을 목말라하는지 알게 됐다. 학생들이 내용을 찰떡같이 이해하고 좋은 반응을 보이자, 다른 학교와 단체에서도 서평을 공부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졌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학생의 눈빛을 지닌 사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쓰게 됐다.
학교의 아카데믹한 성격을 많이 지우고, 서평을 쓰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쉬운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서평러가 되려면 근거를 축적하는 경우라면 전체적인 평가보다는 자신에게 쓸모 있었던 면수를 적어 두거나 구절 자체를 인용해 놓는 편이 현명하다. 우리는 간략한 단형 서평과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블로그 서평을 안다.
모두 대중의, 대중을 위한, 대중적인 글이라고 볼 수 있다. 형식이 딱 정해져 있다거나 절대적인 기대 요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서평 대회에 제출하려는 경우, 학교에서 과제(독후감 과제가 아니라 서평 과제)로 제출하려는 경우, 잡지 뒤에 실리는 전문가서평을 연습하려는 경우의 서평은 공식적이고, 딱딱하고, 정형화된 버전의 서평이다.
블로그 서평 중에서도 전문가 냄새 폴폴 풍기는 전문 서평을 좀 올리고 싶고 남들과 차별화된 블로그 서평을 갈고 닦겠다 목표 삼은 경우에는 형식적으로 장절의 구분을 부드럽게 하면 된다.(장절 구분이 부드럽다는 것은 장절 구분을 적게 한다는 말과 같다).

학술적인 서평과 블로그 서평 쓰기는 엄청나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블로그 서평이 형식적, 내용적으로 진화하면 학술적인 서평이 되고, 학술적인 서평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젊어지면 블로그 서평이 된다. 강조점이나 기본 골격은 상당히 유사하다. 서평러가 쓰려는 아카데믹한 서평은 아무래도 분량도 길고, 내용도 좀 어렵고, 무엇보다 대상 도서가 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식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서평, 평가받기 위한 서평, 문서 작성과 어울리는 서평, 아카데믹한 책을 깊이 있게 다루는 서평을 쓰는 방법을 저자가 알려준다. 전체 글이 길다면 구성이 필수다. 곤충이 머리-가슴-배로 나뉘는 것처럼 서평 역시 앞-중간-끝의 3단 구성으로 나뉜다. 전체 글의 세부 구성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목차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평의 목차를 적을 때 반드시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서론이라는 용어는 실제 서평 작성에서 잘 쓰지 않는다. ‘론’이라는 어휘를 쓰면 서평이 딱딱해지거나 논리적 리포트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이나 절의 소제목을 붙일 때는 서론이라는 단어를 쓰는 대신 최대한 멋진 말을 찾아 써보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서론이라고 하지 않고 디지털 시대의 낭만적 풍경 또는 작가 박완서의 생애와 삶이 녹아 있는 작품 등, 이런 식으로 서론이라는 한 단어보다 표현력이 돋보이는 제목을 붙이는 편이 좋다. 서평은 완전 딱딱하고 학술적이며 논증적인 논문이 아니라 약간은 감각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감수성의 독서 위에 서 있는 글이 서평이다.
서론, 본론, 결론 이 세 단어가 서평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서평에는 앞부분, 중간부분, 끝부분이 엄연히 존재한다. 아니 존재해야만 한다. 성격이 꼼꼼하고 치밀할수록 줄거리 요약에 난항을 겪는다. 왜냐하면 뭐라도 빼먹으면 큰일 날 것같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거리 요약에 있어서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세세한 디테일을 다 챙기다 보면 ‘네버 엔딩 스토리’가 되고 만다. 이것은 서평에서는 비극이다. 줄거리 요약을 잘한다는 것은 글을 다이어트 시킨다는 것과 다른 말이다. 부사를 제거하고, 묘사를 없애고, 긴 서술을 짧게 줄여준다고 해서 모두 요약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나태주딸이고 유튜브를 보니까 강연한게 엄청 많았다. 독서법이나 서평에 대해서 잘 알려줘서 유용한 책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