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하지 않으면 완전히 당하고 자신이나 가족도 지키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나도 좋게만 잘 지내려고 했는데 사기를 치려하고 돈을 빌려 달라고 하고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우리 아빠를 보면 나쁜 말을 잘 못해서 내가 볼때는 당하는 것 같이 보인다. 아빠엄마는 박사까지 공부하고 교수가 돼도 학교에 돈을 안 내니까 학교에서 쫓겨나고 아빠는 행정일을 하는데 아빠가 부드럽고 좋아보이니까 돈을 안 주고 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엄마와 내가 나서야지 돈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사람들에게 안 당하는 방법이 나오는 것 같아서 좋은 것 같다. 그건 정말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저자 박비주는 트잉클컴퍼니 대표로 전국 각지에서 스피치, 퍼스널 브렌딩, 언어 심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콘텐츠⟨맞는말 시리즈⟩를 통해 말맞을 전한다. 말맞이란, 돌려 말하지 않고 핵심을 찌르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맞는 말 한마디로 관계의 판을 바꾸는 언어다.
저자의 게시물은 최근 30일 기준 평균조회수 100만회 기록했으며, 틱톡 팔로워 4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 명을 돌파했다. 저자는 모든 콘텐츠는 직접 기획⦁촬영⦁편집한다. 강의와 콘텐츠 현장에서 검증된 핵심 화법, 즉 ‘말로 지키는 언어 권력’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말은 기술이 아니라 힘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남의 말에 기생해 살았다.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가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저자에게“넌 참 착하다.”라고 하면 그게 최고의 칭찬인 줄 알고 입꼬리를 올렸다. “너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 너 같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야.” 저자는 그 말들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은 “너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받아주는 사람이어야 해.”라는 뜻이었다. 저자는 칭찬을 받은 게 아니라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철저하게 상대에게 이용당하기에 편한 사람이었다.
착하고 이용당하는 사람은 거절하면 상대가 실망할까봐 전전긍긍했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질까 봐 입을 다물었다. 모두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줄도 몰랐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게으른 변명이다.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항복이었고, 예의가 아니라 굴복이다. 착했던 게 아니라 만만했던 거다. 갈등이 두려워 도망친 겁쟁이다.

본인이 대문을 활짝 열어뒀기 때문이다. 문지방을 닳게 만든 건 본인 자신이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억울함에 피가 거꾸로 솟는데 입 밖으로는 습관처럼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를 내뱉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입안에서 피처럼 돌다가 식어버렸고, 삼킨 말들을 목구멍에 ‘미안함’이라는 거대한 혹으로 남았다.
그 혹은 점점 커져 나중에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저자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감정 배출구로 쓰던 인간들, 필요할 때만 찾던 껍데기들은 떨어져나갔다. ‘착하다’라는 말보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 본인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입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뱉어야 한다, 이제는 자신의 말로, 자신을 가두던 세상을 베어낼 차례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하는 공식이 있다. ‘내가 입을 다물면 상황이 조용해진다. 조용해지면 평화가 온다.’ 틀렸다. 완전히 틀렸다. 자신이 입을 다물어서 찾아온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다. 그건 복종이다.
자신의 침묵은 상대에게 “당신들의 마음 대로 뜻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프리패스였다. 당신은 그저 싸우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들은 당신의 침묵을 동의로 해석하고 당신의 영역에 흙발을 들여 놓았다. 한 번의 침묵은 실수일 수 있다. 두 번의 침묵은 습관이 되고 세 번째의 침묵은 영구적인 서열이 된다.
그 순간 관계는 대화가 오가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명령과 수행만 남은 노예 계약으로 변질된다. ‘이 사람은 밟아도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 반응이 느린 사람,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 무례한 농담에도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사람을 보면 상대의 뇌는 즉시 판단한다. 아, 얘는 샌드백으로 써도 되겠다. 착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이유는 성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감정의 깃발을 꽂지 않으니 상대가 그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여기, 평화를 지키려다 호구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잠든다.” 세상에는 남을 깎아내리는 것을 인생의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조각가라고 부른다. 물론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는 투박한 돌덩이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이들은 멀쩡한 사람을 깎아 내려 부스러기로 만든 파괴자들이다. 그들의 태도를 한번 봐라, 아주 가관이다. 눈빛은 이글거리고 손길은 섬세하다. 마치 로댕이 되어 불멸의 명작⟨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조각하는 줄 알겠다. 정과 망치를 들고 상대의 뱃살, 말투, 옷차림, 성격을 아주 디테일하게 깎아내린다.

그래도 우정 교육을 받은 우리는 친구와 비밀이 없어야 하고, 매일 붙어 다녀야 하고,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강박에 시달린다. 카톡 답장이 늦으면 서운해하고 주말에 안 만나주면 변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정이 아니라 집착이다.
서로의 일상을 침범하고 감정을 볼모로 잡는 관계는 ‘절친’이 아니라 ‘족쇄’에 가깝다. 결국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숨막히는 절친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느슨한 관계’가 훨씬 더 건강하고 오래간다.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착각이 있다. 바로 만남의 ‘빈도’가 곧 관계의 ‘밀도’라고 믿는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 술 마시고 , 남 씹고 ,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관계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이 엄청나게 친하다고 믿지만 그것은 친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킬링타임 파트너’일 뿐이다. 모든 관계에서 ‘환기’가 필요하다. 식물도 너무 빽빽하게 심으면 뿌리가 엉켜 다 같이 죽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숨을 쉬고 각자의 방향으로 자라날 수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너무 유명해서 지겨운 말처럼 틀리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이보다 정확한 진리가 없다. 시간은 약이라는 말처럼 열심히 삶을 살아가다 보면 싫은 인간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희미해진다. 인간의 기억력은 참으로 간사하고 이기적인 편집 기술자다.
남에게 받은 상처는 4K초고화질로 평생 클라우드에 저장해두면서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는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어라는 구차한 변명을 달아 휴지통에 넣고 지체 없이 ‘영구 삭제’를 눌러버린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이라는 영화 속에서만큼은 늘 억울한 비극의 주인공이고 세상의 풍파를 혼자 다 맞은 피해자처럼 산다. 자신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은 꼭 말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인간관계는 느슨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