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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 별 하나
  • 왜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나
  • 강희원
  • 19,000
  • 2025-10-10
  • : 305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 강희원은 경희대학교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한 뒤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독일 프라아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및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30여 년간 재직하며 법적학, 법사회학, 민사소송법, 노동법, 법조 윤리를 강의하였다.

현재는 경희대학교교수로 있다. 저자는 법의 문제를 인간, 국가, 사회, 종교, 정치, 언어 등과의 관제 속에서 탐구해 왔다. ‘법과 인간’ ‘법과정치’ ‘법과 사회’ ‘법과 종교’ ‘법과 언어’와 같이 접속사나 하이픈을 통해 법을 다양한 인문∙사회적 맥락과 연결하는 ‘사이학’ 또는 ‘사회철학’을 추구해 왔다.

『노동법의 새로운 모색』, 『노동법 기초이론』, 『법철학 강의』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R,C, 크빈트의 『노동철학』과 니클라스 루만의 『법사화학』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또한 「한국의 법문화와 샤머니즘」, 「독일적 법사유와 한국법학의 반성」, 「역할법으로 노동법」, 「태초의 노동계-성경의 노동약정」, 「법과 폭력」, 「법의 녹색화의 녹색법학」, 「법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등 1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진영을 나누어서 크고 작은 국가들이 공동방위라는 미명하에 군사조약을 체결하고, 전투기, 항공모함, 미사와 핵폭탄 등 온갖 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전쟁 훈련을 하고 있다. 그 주역은 바로 ‘국가’다.

국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논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한반도에 서로 대립하고 있는 정치세력과 그 껍데기인 국가의 정치세력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우리는 동포이고 한겨례다.”라고 떠들어 대면서, 이른바 ‘민족통일’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극한의 군사 대치를 수십 년간 이어오고 있다.



20세기 말, 세계적인 경향으로서 경제와 정보가 글로벌화 하는 한편,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간의 대립이 머지않아 곧 끝 날 듯하더니, 금세 새로운 대립이 생겨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다. ‘전쟁’이란 병력에 의한 국가 간의 투쟁이다. 광의의 의미인 내전이나 반란도 포함해서 전쟁은 유사 이래 집단을 형성한 인류가 반복해 온 집단적 폭력 현상이다.

물리적인 공격을 수반하지 않는 치열한 다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선 정보전쟁∙무역전쟁∙사이버전쟁 수험전쟁 등의 말도 쓰이고 있다. 이 경우에 ‘전쟁’ 국가폭력으로서 어떠한 폭력적 방식으로든 전쟁 당사자뿐만 아니라 인류를 포함한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는 것까지 정당화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어떻든 전쟁은 태고부터 있었던 인류의 집단적 폭력행사로, 가장 원시적이고 무자비한 분쟁 해결 수단이다. 고대의 전쟁학적 논고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가 있다. 이 책에서 소크라스테스는 다양한 영역의 장인, 전문가로 구성된 자조적인 국가를 상정하나 국가가 성립하였다고 해도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기에 자족하는 것 이상의 자원을 추구하여 다른 공동체와 전쟁이 발생한다고 논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전쟁의 근본을 정치체로서 국가에서 찾는 시각이다. 실제로 군사에서도 국가가 전쟁의 주된 행위주체였고,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물론 애초에 전쟁이 성립되기 이전에 ‘인간들은 왜 서로 대립하는가’가 인간 본원적인 문제도 있다.

사회학자 믹스 베버는 어떤 주체가 상대방의 저항을 배제해서라도 자기 자신의 의지를 달성하려는 의도로 방향을 잡는 사회적 관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이 투쟁은 물리적 폭력에 기초한 투쟁이나 투쟁 수단을 비폭력적인 것으로 한정한 평화적 투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이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정치사상가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나 정치단체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를 말한다. 즉 개인이 각기 동일하게 자기 보존의 법칙에 따라 생활자원을 획득하고 적의 공격을 예방하려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만인에 대한 투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전쟁에 관해서는 종래 다수의 소위 과학적 이론이 존재했다. 생물학자는 전쟁을 생존경쟁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고, 심리학자는 투쟁본능의 표현이라고 이해한다. 또한 사회학자는 전쟁을 생활력과 노동력을 지닌 노예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종족적 지배투쟁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는 자본의 발전에 수반하는 시장의 확대와 원료생산지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식민지의 무력적 점령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고 설명해 왔다. 그와 같은 소위 과학적 설명이 전쟁이 갖는 각 일면을 보여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설명이 과학의 진보에 따라 비판∙수정되고 새로운 설명에 의해서 치환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은 우리의 마음을 쥐어짜고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한다. 우리는 출정자를 격려해 전장으로 보내고, 전사자의 공을 기리며, 개선자를 기쁘게 맞이한다. 이는 전쟁이 단순한 자연적 사실을 넘어 사회적∙정치적 의의를 지니고, 우리의 정신에 울림을 주는 사건임을 의미한다. 그러한 전쟁의 의의나 정신에 대해 과학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논자가 전쟁의 의의와 정신을 긍정해 왔다. 그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것도 근현대사에서 전쟁을 찬양하는 이른바 ‘전쟁의 형이상학’을 전개했다. 이러한 전쟁의 형이상학 지배집단에 부역하는 어학자들이 아무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계속해서 민중을 지배하고 선동하기 위해 만들어 낸 지배집단의 정치적∙사회적∙심리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포기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근거로 들 필요도 없이, 옛날부터 많은 경의를 받아왔다. 반면, 전쟁은 어떠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최고의 악이다. 무엇보다 무수한 무고한 사람들은 폐절시키는 것은 그 사정 여하를 불문하고 순수한 비극이고,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과오라는 주장도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어 왔고, 앞으로 그러한 공감을 점점 커질 것이 확실하다. 전쟁은 무조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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