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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 별 하나
  •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신효원
  • 16,920원 (10%940)
  • 2025-10-09
  • : 17,130





저자 신효원은 한국어라는 언어를 연구하고 가르쳐 왔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 했으며 지난 18년간 서강대학교 한국어교육원과 각국 주한대사관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했다. 언어의 폭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는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어휘 공부⟫, ⟪아홉 살에 시작하는 똑똑한 초등 신문⟫등이 있다.

저자는 사소해서 놓쳐 버린 삶의 장면 속에는 어떤 단어가 숨 쉬고 있을지 언제나 궁금하다. 단어는 우리의 세계를 열어 준다. 저자는 보통의 날들에 숨겨진 명랑하고 눈부시게 투명한 순우리말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우리들의 세계 속에는 얼마나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과 감정과 움직임이 있을까? 우리는 텅빈 마음처럼 무심코 지나쳐 왔을까? 어떤 언어가, 단어들이 자기 세계를 열어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면 유용한 단어 목록에서 출발하는 대신, 삶의 장면과 장면에서 단어들을 발견해 가야 한다.

무턱대고 저자는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보통의 날에 숨겨진 단어들을 찾아내보자고, 삶과 유리되지 않은 또렷하고 생기 있는 단어들을 책에 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록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한글’이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으며 따뜻함과 설렘, 공허와 슬픔을 느끼는 순간에는 어떤 보편적 감각과 감정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우리가 통과해 온 다정하고도 시렸던 순간, 사소해서 놓쳐 버린 삶의 장면 속에는 어떤 단어들이 숨 쉬고 있을지를 찾았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한 단어들을 궁금해 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는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이야기를 이어 간다. 줄임말, 신조어, 외래어 등이 널리 퍼지고 있는 요즘, 순우리말이 그 거리감을 넘어 얼마나 선명하고 감각적으로 세계를 그려 내는지 이 책을 읽는 사람들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곳곳마다 스쳐 지나간 순우리말의 생명력과 온기가 바람과 함께 닿을 것을 확신하다. 순우리말과 바람이 맞닿는다는 얘기가 뭔지 궁금하다.



책을 읽는 동안 때로는 눈부시게 명랑한 순우리말이, 시리고 아릿한 순우리말이 우리의 마음에 환한 불을 밝히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우리들의 오롯한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기를 바란다. 다정하게 안녕을 묻는 말들이 여기, 읽는 사람을 가만가만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사랑해 왔던 단어들이, 우리가 앞으로 사랑하게 될 단어들이 사람들의 세계를 활짝 열어 주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단어를 응얼거려본다. 오늘도 기쁨과 슬픔의 빛이 하나둘 켜지며 사람의 세계를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비록 온갖 감각에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살아가야 했지만, 그렇다고 삶이 늘 고달픈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에게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작고 소중한 것들이 저자에게만큼은 눈에 잘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발견하고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을 남몰래 맞이하는 즐거움은 예민한 자에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저자는 꽤 재능이 있은 것 같다.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감정과 의도, 기대 같은 것들이 저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런 걸 알아차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또 일상의 순간들을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슬픈 일은 슬픈 일은 일대로, 사소한 것은 사소한 대로, 중대한 것은 중대한 대로, 저자에게 오래도록 머물렀다. 수많은 순간들은 저마다 다른 질감과 무게, 밀도를 가졌지만 저자는 모든 순간에 마음을 펑펑 쏟아내고 기진해졌다.

이곳저곳에 온 마음을 들이던 저자는, 자라면서 느끼는 슬픔과 기쁨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이해받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다. 예민해서 그렇다는, 위로와 타박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는 수식어가 저자에게 늘 꼬리표처럼 매달려 다녔고, ‘몽니’를 부린다는 오해도 곧잘 따라붙었다.

저자의 마음을 덮어 싼 막은 갓 생겨난 여린 피막 같은 것이어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금세 찢어져 속살이 드러났고, 쓰러졌다. 저자는 둥근 세상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동글동글한 마음의 모양새를 닮아 가고 싶었다. 감각의 높낮이는 삽질해 평평하고 민틋하게 깎고, 보이는 것들은 윤곽만 남겨 보자고, 어느 날 저자는 그렇게 결심했다.

저자는 시계 분침이 돌아가는 소리에 전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됐고, 자동차 경적에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았다. 시간을 쓰지 않으면 애쓴 감각들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있던 것이 없던 것이 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너는 예민하니까’라는 슬로건을 자신 안으로 향하게 걸어두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자신을 기꺼이 맞추려고 했다. 저자는 예민하니까 자기 마음이 지나친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자신이 느끼는 걸 반으로 줄여야 남들과 비슷해질걸, 이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인은 그렇게 저자보다 우선이 되었다.



아쉬움을 달래 주기라도 하듯 저자는 어릴 때의 자신의 모습과 똑닮은 딸을 낳았고, 섬세한 아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고충을 겪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이가 예민함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만의 곱고 선명한 마음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저자의 다짐은 깊은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 “엄마는 말이야”, 너의 마음으로 느껴도 되는 건지 아니지 네가(딸) 두리번거리지 않기를 바란다. 네(딸) 마음이 편하게 사랑하기를 바란다. 두 발로 땅 속 깊이 단단히 밝고 서서 지금 모습 그대로 네(딸)가 온전하다는 걸 잊지 않는, 그런 삶을 네(딸)가 살아갔으면 좋겠어.

‘한 여덟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횡단보도 앞에 선 아이는 가방끈을 양손으로 꼭 붙잡고 서 있었다. 저자가 아이를 발견한 건 우회전하려고 슬슬 핸들을 꺾던 순간이었다. 아이가 편하고 안전하게 건널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나름의 배려였다.

아이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저자의 눈치를 계속 살피며 머뭇거렸다. 앞으로 겨우 내디딘 걸음을 거두었다. 저자는 차안에서 지나가라고 재차 손짓했지만, 산란한 햇빛에 흩어진 저자의 손동작이 아이에게 보일 리 만무했다. 아이는 떠밀리다시피 마지못해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아이 쪽으로 손을 쭉 뻗어 휘저으며 소리쳤다.

“가도 돼, 괜찮아!”아이는 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다 알아들었다는 듯 상그레하더니 단걸음에 달려갔다.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너그러운 대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시간 속에서 복숭아향이 날 것 같은 상그레한 웃음을 자주 꺼내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가만가만’이라는 단어를 보면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조용다 하다라는 뜻이다’ ‘가만하다’도 있는데, 이는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이른다. ‘흔히’ ‘죽은 듯이 가만하고 있다.’ 예문을 보면 그는 무슨 일이 있건 가만히 있다.

‘찹찹하다’는 마음이 들뜨지 않고 차분한 상태를 두고 우리는 ‘찹찹하다’라고 말한다. 차분한 성격을 이루는 또 다른 표현으로는 ‘찬찬하다’가 있다. 무슨 일을 하건 꼼꼼하고 차분한 사람을 표현할 때 쓸 수 있다.

‘몬존하다’라는 순우리말도 있는데, 이 역시 차분하다는 뜻이다. ‘몬존하다’는 사람의 얼굴 모습이다 초라할 때도 쓰인다. 성질이나 태도가 부드럽고 조용하며 찬찬하는 뜻의 ‘자분자분하다’가 우리가 흔히 아는 ‘차분차분하다’라는 것을 알면 ‘자분자분하다’를 기억하기 쉬울 것 같다.

차분함은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쓰인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차분하지만 지나치게 곧고 고지식해서 상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참 놀라움을 느낀다. 우리말도 너무너무 광활한 것 같다. 그 광할한 단어속에서 사랑하고픈 단어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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