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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hyuk님의 서재
  • 종의 기원 이펙트
  • 재닛 브라운
  • 12,600원 (10%700)
  • 2012-10-20
  • : 120

인류의 기원에 가장 큰 변화와 논란을 일으킨 책인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로버트 다윈은 1809년 2월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으며 생활 수준도 높았다. 그의 두 할아버지는 시인이자 초창기 진화 사상가이자 의사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유명한 도예가인 조사이어 웨지우드였다. 이렇듯 다윈의 집안은 지적이며 자유사상과 과학을 중시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다윈은 의사가 되고 싶어했고 화학을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취제 없이 수술하는 장면을 보고 의대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식물학과 지질학 등의 수업을 듣고 자연사에 몰두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다윈에게 조사선 비글 호를 타고 세계 항해를 해보지 않겠냐는 편지가 왔다. 이 항해를 통해 다윈은 안데스 산맥 횡단과 남아메리카 대륙 탐사 등을 할 수 있었고 여기서 얻은 표본과 기록을 토대로 몇 권의 책도 출간 할 수 있었다. 다윈은 이 활동을 통해 관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항해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다윈이 지질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라는 책에 감동을 받았으며, 그의 ‘점진적 변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다윈이 항해에서 돌아온 세계는 변화로 들끓고 있었다. 다윈은 항해에서 얻은 표본들을 나누어주며 인맥을 쌓았고, 사촌인 에마 웨지우드와 결혼했다. 돌아온 지 4~5개월 뒤 그는 종이 ‘신의 힘 없이’ 기원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다윈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신의 노트(변형 노트)에 적으며 이론을 펼쳤다. 1838년 9월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다윈의 연구는 방향을 찾는다. ‘너무 많은 개체가 태어난다.’ 즉,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개체는 죽고 적합한 개체는 살아남아 번식한다는 내용의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후에 이 단어는 적자생존으로 대체 된다. 20년 뒤 이 이론은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표 된다. 그때까지 다윈은 이 이론을 비밀에 부치며 신중하게 탐구해 나갔다. 하지만 다윈은 연구를 하며 만성 질병에 시달렸다. 메스꺼움과 두통에 시달렸으며, 기력이 빠지기도 했다. 다윈이 무신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받는 종교적 가책과 과로가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신중하게 때를 기다리던 다윈은 1844년 ‘흔적들’이 출간되며 충격을 받았다. 전반적인 주제는 다윈가 비슷했다. 이 책을 읽은 다윈은 쏟아지는 독설들을 보며 자신을 걱정하고 자신의 이론을 보충했다.

엄청난 자제력으로 출간을 미루던 다윈은 편지 한 통을 받고 급하게 출간을 결정한다. 그 편지는 러셀 월리스가 쓴 것으로 그가 쓴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 적혀 있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좌절한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요약해 월리스와 논문을 공동 발표 했다. 그리고 13개월 뒤 ‘종의 기원’을 완성한다. 그는 자신이 앞서 써놓은 긴 원고를 대폭 줄인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종의 기원을 훌륭한 과학책이 되어 나왔다. 이 책은 다윈 생전에 6판까지, 총 1만8천부가 출간 되었다. 다윈이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고 편견을 없애라고 권유했음에도 ‘점진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신을 내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고 의견을 제시했다. 밖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다윈은 집에서 조용히 머무르며 쏟아지는 편지들에 답을 했다. 밖에서의 논쟁은 다윈의 친구 4명이 각개전투를 벌이며 맡아주었다. 그 넷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토머스 헨리 헉스리이다. 동물학자이자 비교해부학자인 그는 유창한 말 솜씨로 유인원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왔으며, 종교에게 교육을 되찾으려 노력했고, 경쟁자 리처드 오언과의 논쟁에서 독설을 퍼부으며 다윈을 옹호했다. 그의 선전 활동은 ‘진화론 마케팅’이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다윈의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은 악용되기도 했다.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와 유태인 말살 등을 합리화하는데 쓰였으니 말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에 대한 내용을 일부러 뺐다. 아마도 너무 심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인간의 유래’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이라는 두 개의 책을 통해 인간에 대해서도 저술한다. 여기서 내가 과학토론반에서 진화심리학을 공부하며 배운 내용이 나와서 반가웠고,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다윈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종의 기원’이 출간 된지 23년 뒤이다. 그는 역설적이지만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묻혔다. 그가 죽고 생물학에 새로운 주제들이 떠오르며 자연선택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새로운 종합이 나오면서 다윈주의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다윈주의의 영향으로 우생학이 융성하고 부적합자들을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이 시작되었다. 약 6만 명의 정신장애자들과 죄수들은 불임수술을 받았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0년 동안 독일인의 우수성을 위해 30만 명의 유대인에게 불임 수술이 실시되고 결국 안락사 계획으로 까지 치 닫았다. 생물학에서는 유전학이 등장했고, 멘델의 연구가 발표되며 돌연변이 이론이 생겼다. 이는 사실 진화가 급진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해 비다윈주의적이다. 다윈주의는 점점 잊혀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전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헉슬리의 ‘진화: 현대적 종합’이 출간되며 하나로 합쳐졌다. 또한, ‘종의 기원’ 출간 100주년에 맞추어 발표된 버나드 케틀웰의 회색가지나방 연구도 성공적이었다. 이 나방은 흑백 반점을 가진 종과 흑색증을 보이는 돌연변이가 있다. 이 둘을 동시에 방사했을 때 눈에 띄는 한쪽이 먹히며 다른 쪽이 살아남는 영상은 적자생존의 명확한 증거가 되었다.

초반에는 다윈의 생애에 관한 내용이라 어렵지 않았지만, 중, 후반은 조금 집중력도 떨어지고 내용도 어려워져서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었다. 하지만 후반에 중간중간 진화심리학에서 배운 내용이 눈에 띄어서 흥미가 생겨 조금이나마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요약을 하며 책을 다시 읽을 때에는 처음 읽을 때보다 훨씬 많은 내용이 보였다. 내가 처음에 얼마나 대충 읽었는지 와 역시 두 번 읽으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배운 책들도 틈틈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토론을 하며 풍부한 내용을 받았었으니 다시 읽을 때는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

예전에 다윈에 대한 위인전을 읽어 봐서인지 앞부분을 읽을 때는 새록새록 기억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는 무슨 기억나는 건 다윈이 세계 일주를 했다는 것 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도 복습을 안 하면 다 까먹는 것 같다. 한번 할 때 과학토론반처럼 책 읽고, 요약과 독후감을 쓰고, 토론도 하면 좀 덜하겠지만. 그런데 왠지 위인들의 이야기를 보면 다들 어째 죄다 어디가 아프고 만성 질병에 시달리는데, 이게 과로해서인지, 원래 살면서 다들 그 정도는 아픈 건지 모르겠다. 옛날이라 지금보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되새긴 사실은 역시 공부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윈을 보면 일도 거의 안하고 연구와 책 만들기만 한 것 같은데 만약 집안이 가난했다면 아마 ‘종의 기원’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하니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지 한번 토론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책이 그렇게 논란의 중심이 있는데 다윈이 소극적으로 집에서 편지에 답을 하는 정도로만 대응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 점은 나도 다윈에게 본받아 잘 사용한다면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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