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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경찰은 위험인물을 잡아들여 자백을 받고 처형한다. 그것도 단두대에서. 벌써 뭔가 안 좋은 기분이 든다. ˝딱 보기에도 단두대를 세우는 사람을 믿어선 안 돼˝라는 대사가 떠오른다.(p.350) 게다가 여기에서 위험인물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위험인물로 지목된 순간 끝이다. ‘마녀사냥의 부활‘이라고 부를 만하다. 위험인물 제거라는 명목상의 취지보다 일종의 잔인한 오락으로 변질된 것 같다. 평화경찰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 위험인물이 되어 처형된다. 예로 TV토론에서 논거를 펼치며 강력히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아라시야마‘라는 평론가는 스치듯 언급되었지만 위험인물로 처형되었다.(p.46) 무소불위의 독재 권력, 독재 정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연히 독재 세력은 불만과 반대를 야기하게 마련이다. 검은 복장을 한 ‘정의의 편‘이 나타나 평화경찰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평화경찰 형사 2명을 죽이는 일까지 벌인다. 그 이후로 책의 내용은 ‘정의의 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평화경찰제도는 어떻게 될 지와 관해 재밌게 진행된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다양한 것 같다. 이 책의 교훈점에 대해 꼽으라면 독재정치는 무너지기 쉽다는 것부터 ‘상사에게 잘하자‘ 나 ‘정보를 미끼로 비아그라를 판매하려는 사회에 대한 풍자(...)(p.170, 심지어 비아그라를 사고 싶어도 그 페이지에서는 안 팔 가능성이 높단다...)‘까지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우선 정의와 위선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책의 내용 중에 흥미로운 점이 몇 있다. 그 중 하나는 정의를 대변해야할 경찰이, 책에서는 특히 ‘평화‘라는 단어까지 명칭에 포함하고 있는 평화경찰이 ‘정의의 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점이다. 독자입장에서는 평화경찰이 못 된 짓을 일삼으니 ‘정의의 편‘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도쿄에서 파견됐다고 하는 마카베 고이치로라는 수사관 역시 ‘정의의 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흥미롭지 않았나 싶다. 이쯤에서 책에서도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책에서 정의에 관해 언급한 대목을 보면 ‘정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마카베 고이치로의 말대로 ‘세상에 악 같은 건 없으며 전부가 정의라고 해도 될 정도‘(p.167)라는게 이 책에서 보이는 정의에 대한 입장인 것 같다. 여러가지 인물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그려낸 전개방식도 그런 입장에 한 몫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정의의 편‘은 불충분한 근거를 들어 시민들을 자의적 구금하고 고문, 처형하는 평화경찰로부터 시민을 구하는 일을 하지만 경찰인 니헤이가 보기에 ‘정의의 편‘이라고 불리는 검은 작업복 남자는 정의의 편도 아니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데다 취조 중인 동료 경찰까지 죽인 악인인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도 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호불호를 보편적인 정의의 잣대로 삼는 착각을 하게 되기가 쉬운 것 같다. 그럼 ‘대체 어떤 가치를 정의로 삼고 살아가야 하나‘하는 의문도 생기지만 그에 앞서 나에게 정의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살아간다면 좀 더 합리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자석을 묶는 데서 비유된 것처럼 하나의 생각으로 억지로 획일화된 사회는 좋아보여도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오히려 건강한 사회라면 갈등없는 사회보다는 건전한 갈등과 토론이 자주 일어나는 사회가 아닐까.

책에서 정의 못지 않게 의문을 던지는 듯한 주제가 있는데 바로 ‘위선‘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겉으로만 착한 체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들은 단순한 악행보다도 믿었던 사람의 배신 행위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위선은 겉으로 선을 행하고 착한 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배신과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위선자‘에 대해 더 많이 분노하고 가증스럽게 여긴다. 일종의 배신감도 느낄지 모른다. 단순히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위선자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 선행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선행을 보인 사람은 선행을 칭송받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위선자가 아닌지 사람들의 주목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위선자‘라는 틀은 꽤나 무섭다. 그간의 선행을 모두 뒤집고 위선자 본인은 악인이 되며 이전과 앞으로의 모든 선행들 또한 의심스럽거나 가증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그런데 아무나 위선자가 될 수는 없다. 악인은 위선자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미 악인으로 알려진 사람이 사람들에게 선행을 한다면 위선으로 보이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위선은 착한 행동을 필요로 한다. 요컨대 한결같이 나쁘기만 한 사람은 위선자가 될 수 없고 한 번 이라도 선행을 한 사람이 위선자가 될 자격(...)을 얻는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할 것이다.) 이 쯤에서 책에서 던지는 의문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한 사람을 도와준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도와줘야 하는가?‘ 혹은 ‘히어로는 불행한 사람이 눈에 띄는 족족 다 구해야만 하는가?‘ 하는 맥락의 의문이다. 한 번 선행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위선자로 보이지 않기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까? 히어로의 딜레마라고도 할 수 있을까. ‘A는 도와주고 B는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 모두를 도와줄 수는 없는데 어쩌지?‘(p.256)하는 고민이 생길 수 있다. 한 사람을 도운 사람에게 모두를 도와야 한다 내지는 다른 사람도 도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한 사람을 도왔다고 해서 그런 책임이 생긴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위선인가, 아닌가? 그는 그저 한 번의 선행으로, 한 번의 착한척으로 좋은 평판을 산 것인가? 원래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느낄 사람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 점 때문에 ‘정의의 편‘은 활동에 있어서 분명한 원칙과 한계를 정하고 움직인다. 그렇게 해서 위선에 관한 문제와 고민을 대부분 해결한 것 같지만 여전히 뭔가 뒷 맛을 남기는 것 같다. 남을 돕는다는게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던가?

사실 그 밖에도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특히 마카베 고이치로라는 수사관의 이야기들은 언뜻 곤충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은유적으로 생각하면 그럴듯한 말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야쿠시지 경시장에게 일반 시민들을 벌레나 개미처럼 여기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개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이며 한 마리에 손을 댔다고 생각한 순간 수천 마리를 상대해야 하는 지경에 빠진다고(p.169) 했을 때는 정말 훌륭한, 좋은 은유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 해충의 종류에 관해 얘기하며 해충이라도 해가 없는 종류가 있으며 인간에게 방해가 되느냐 아니냐는 상당히 자의적이라고 할 때(p.261~263) 평화경찰이 선정하는 위험인물 또한 사회에 위험이 되는 사람을 고른다 해도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가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잘 썼고 재밌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도 읽다가 어려운 부분 없이 읽을 수 있는 정도로 지루하지 않게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그저 의심받는 사람을 물에 빠뜨리는 거야. 그러니까 죽기 전까지는 죄가 없다는 걸 밝힐 방법이 없는 거지. 죄다 그런 논리야. ..."
"그건 뭐야? 뽑히는 순간 끝이라는 소리잖아?"(p.10)

"... 아무리봐도 고문으로 사망한 게 분명한 사체를 앞에 두고 심장발작 이라고 버틴다, 그것이 바로 국가 권력입니다." (p.58)

"위험한 인물이 위험인물이 되는 게 아니라 우험인물로 지목된 사람이 위험인물이 될 뿐이라는 걸." (p.121)

"이쪽의 정의는 저쪽의 악,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아. 아무리 정당한 벌이라도 받는 입장에서 보면 악이 되니까." (p.123)

"... 세상에 악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전부가 정의라고 해도 될 정도죠." (p.167)

"역시 야쿠시지 씨는 일반 시민을 벌레나 개미처럼 생각하는군요. 아, 하지만 개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 중에 하나입니다. ... 개미에게 잘못 손을 대면 한 마리에 손을 댔다고 생각한 순간, 수천 마리를 상대해야 하는 지경에 빠지니까요." (p.169)

"맞습니다. S극과 S극을 나란히 맞추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잘게 부수어 방향을 맞춥니다. 다만 방향을 뒤섞는 쪽이 안정됩니다."
"안정된다고요?"
"자력이 약해지지만 묶기도 쉽고 에너지 면에서 안정됩니다. 그러므로 자연계에서 안정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므로 사회인의 사고방식도 하나로 다 맞추지 않는 쪽이 자연적인 상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힘은 약하지만 안정됩니다." (p.242)

"위선, 위선 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꼴보기 싫은 게 아닐까 해서요." (p.270)

아버지의 머리를 스친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곤경에 처한 한 사람을 구했다면 다른 사람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위선자!
그런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것을 증명했다. (p.335)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세상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니까. 그게 싫으면 화성에라도 가서 사는 수밖에 없지."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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