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Redman님의 서재




 미셸 푸코 수용사는 푸코의 사상만큼이나 흥미로운 주제이다. 푸코의 수용에는 영어권 학술출판시장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프랑스어 문헌을 직접 읽기 어려운 독자들은 자국어 번역이 없다면 영역본을 통해 푸코를 접할 수밖에 없으며, 푸코에 관한 학술적 논의가 가장 많이 유통되고 전달되는 통로 역시 영어권 학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한 이들을 제외한다면 푸코를 읽는 압도적 다수의 연구자들은 (설령 그것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지라도) 영어권에서 구축된 푸코 해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푸코 수용사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현상은, 푸코가 실제 수행한 작업과 수용자들 사이의 학적 기반의 차이다. 실제 푸코가 무엇을 하는지에 집중한다면 푸코의 작업은 대부분 역사적 분석에 기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푸코에 대하여 가장 활발하게 논의하고 푸코의 이미지를 구축한 학계는 철학계처럼 역사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이었다. 바로 이 간극으로 인해 푸코는 다소 불합리하게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던 철학자, 하이데거주의자, 반계몽주의자로 평가받았으며, 영미권의 좌파 급진주의자들이 푸코의 일부 저술만 선별적으로 읽어 푸코를 권력 편재의 이론가로 소개했다. 물론 푸코는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평가들 중 무엇 하나에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책이 푸코에 대한 관습적 해석을 따른 예시







폴 벤느의 책이 지닌 미덕은,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과 푸코의 방대한 저술을 종합함으로써, 대다수 입문서와 달리 푸코를 ‘포스트모던·구조주의 철학자’나 ‘권력의 이론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 위에서 사유하고 작업한 ‘회의주의 역사가’로 재위치시키는 데 있다. 벤느는 책의 첫 문장부터 푸코에 대한 전통적 평가들을 반박하며 시작한다. “아니다, 푸코는 구조주의 사상가가 아니었다. 아니다, 그는 이른바 ‘68 사상’에 속해 있지 않았다. 그는 상대주의자도, 역사주의자도 아니었다. 이데올로기의 편재를 간파한 이도 아니었다...그는 회의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사실들, 자신이 쓴 책의 모든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의 진실만을 믿었다.”(p. 9) 이러한 관점은 벤느가 1978년에 쓴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Foucault ne rêvait pas à la révolution)의 내용을 확대한 것에 가까운데, 이 논고는 푸코를 일종의 유명론자, 즉 선험적·초역사적 전제들을 거부하고 구체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역사 속 실천을 이해하려는 역사가로 그려낸다. 푸코의 이데올로기적 견지가 아니라 역사를 분석하는 태도를 강조하는 관점은 저자가 일급의 고대사가였을 뿐 아니라, 생전에 푸코와 학문적·인격적으로 깊은 친분을 맺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벤느 역시 콜레주드프랑스 로마사 교수를 역임했으며, 푸코의 동료로서 그의 행동과 말, 강의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푸코가 다룬 주제나 그의 주장을 개괄하는 개설서는 많아도 푸코의 사고방식과 방법을 다룬 글은 희귀한데, 자신이 일반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역사가이자 역사학 방법론에 대한 책을 저술한 적도 있기에 벤느는 푸코의 저술에 흐르는, 역사의 복잡한 결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방법론을 더 민감하게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



  제목이 지시하는 바처럼, 본서는 푸코의 ‘사유’ 방식과 푸코의 친구가 바라본 ‘인간’ 푸코에 대한 글들이 수록된 학술 에세이다. 이중 전자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1~8장이 유용할 것이고, 푸코의 인간적 면모를 알고 싶은 독자라면 9~11장(2장 초반부에도 당대 프랑스 학계의 냉정한 반응에 실망한 푸코에 대한 사적이면서 흥미로운 코멘트가 들어가 있다)이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푸코의 사유방식을 다룬 장들은, 원서가 출간된 2008년 당시 읽을 수 있는 푸코의 저술을 폭넓게 인용하면서 그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장 “세계사 안의 모든 것은 특이하다 - 담론”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만 이해되는 담론 개념이 푸코의 역사 분석에서 지니는 함의와 그 기능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벤느가 강조하는 바는, 푸코의 독특한 사유방식은 현상에 곧바로 거대한 일반론을 적용하는 대신 그것을 가장 미시적인 수준으로 분할하여 분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유방식을 집약한 개념이 담론이다. 담론이란 “날 것은 역사적 구성물(formation historique)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촘촘한 묘사이며 그 종국의 개별적 차이에 대한 규명이다.”(p. 14) 푸코는 보편성을 상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성을 파악하고자 하며, 담론은 그런 측면에서 과거의 특이성(singularité)이 보여주는 궁극적 차이(differentia ultima)를 드러내는 개념이다. 이 특이성의 핵심은 어떤 대상이나 실체의 본질적 성격을 가정하지 않은 채 구체적 사실로부터 대상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데에 있다. 푸코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천(practice)의 세부 사실, 즉 당대인이 실제로 말한 것과 행한 것에서 출발하여 그러한 실천에 대해 어떠한 담론을 형성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코는 일반적이고 초역사적인 진리를 거부한 회의주의자면서 각 시대의 담론적 실천이 현실의 다양한 영역에 어떻게 파고들며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했는지를 파헤치려 한 역사가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벤느는 푸코의 방법론을 사람들이 행하거나 말한 것을 해석하는 동시에 그들의 언행과 제도에 무의식적으로 전제된 것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실증주의”(p. 28)로 규정한다.



  푸코는 일반적 진리를 거부하고 구체적 실천에서 역사적 현상을 분석하는 유명론자라는 벤느의 주장은 이후 장들에도 일관되게 관철된다. 2장 “역사적 아프리오리만이 있을 뿐이다”는 1장의 분석을 확장하여 담론 개념을 더 명료화한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적 아프리오리’란, 특정한 시대의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점이나 전제를 가리킨다. 관습, 말, 지식, 규범, 제도 등을 작동시키는 담론이 이에 해당하는데, 마치 투명한 ‘어항’처럼 그 안에 있는 존재는 이를 직접 볼 수 없지만, 이를 통해서 현상을 해석한다. 담론적 실천 혹은 ‘장치’(dispositif)는 담론을 사회 속에 구현한다. 제3장은 벤느가 푸코를 규정하는 또 다른 술어인 ‘회의주의’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푸코의 회의주의는 모든 지식의 확실성이 아니라, 초역사적이고 일반적인 진리만을 겨냥한 회의주의였다. 푸코는 역사적 사실들의 실재성, 혹은 경험적 특이성은 긍정했는데, 푸코는 이 구체적 사실이 역사적으로 언제나 관점에 따라, 그리고 어떤 담론을 통해서만 획득된다고 주장한 점에서 상대주의도 아닌, 관점주의(perspectivisme)에 가장 가깝다. 푸코의 작업은 당대인이 해석한 작은 사실에 암묵적으로 전제된 담론을 드러내는 “역사적 해석학”(p. 58) 위에서 작동한다. “푸코의 예리한 책들은 반란자의 것이 아니다...그것들은 검으로, 사무라이의 칼로 쓰인 글이다.”(p. 67) 4장은 푸코의 고고학 연구를 (푸코가 사숙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계보학과 연결지어 개념과 실재가 역사적으로 형성되거나 변화하는 양상을 분석하는 작업임을 보여준다. 푸코는 동일해보이는 실재더라도 시대마다 다른 담론 속에서 다르게 파악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4장의 백미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개념과 푸코 담론을 비교하는 대목인데, 두 세쪽 정도로 짧지만 핵심 요점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5장은 푸코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로서 예수를 비롯한 1세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다. 제6장 “하이데거가 뭐라고 했든, 인간은 지성적 동물이다”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인간론과 푸코의 사상을 조목조목 비교하면서 다시금 역사적 실증주의자로서의 푸코의 특징을 강조한다.
















  구체적 사실, 특이성, 담론, 장치와 연결시켜 주체(subject) 및 주체화(subjectivation)와 지식-권력의 문제를 논의하는 7~8장은, 후기 푸코의 주제와 사유방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역사가로서 푸코의 관심사는 지식과 관련된 과학기술이 국가의 통치와 얽히는 양상이었다. 16세기 이래 근대적 통치의 특징은, 권력의 획득·유지술이 아니라(푸코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권력획득술의 텍스트라고 본다) 국력 강화의 수단으로서 신민 통치가 중요해졌고, 그 과정에서 전문지식과 기술이 본격적으로 정치의 영역에 들어가 통치를 하나의 과학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통치술의 목표는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구(population)의 조건을 개선하여 국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푸코는 무엇이 인간을 좋게 만드는가를 판단하는 필터가 생기거나 바뀌고, 늘어나는 과정에서 과학이 수행한 역할에도 주목한다. 여기서 진실의 문제가 개입된다. 진실 체제와 그 실천은 지식-권력의 장치를 구성한다. 이때 푸코가 말하는 권력이란 “타자의 품행(conduite)을 물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도하는(conduire) 능력이다.”(p. 134) 장치는 과학적으로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언표들의 규칙을 형성한다. 지식과 과학은 이 규칙 아래에서 인간이나 공동체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고 여겨지기에 사람들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세상 어디서든 장치 안에서 진리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복종하게 만드는 권력을 지니며, 인간 주체를 그에 복종하게끔 형성한다. 군주의 권력이 정당하다는 것은 진리이며, 군주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이다. 우리는 그의 충실한 신민[주체, subject]이 된다.”(p. 125) 이 장들에서 더욱 돋보이는 부분은 막스 베버(Max Weber)나 토머스 쿤(Thomas Kuhn)의 작업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들을 푸코의 작업과 비교하는 대목인데,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푸코의 주체화와 엮는 부분은 베버의 주장을 푸코와 연결짓는 가능성을 주며, 푸코가 간과했던 종교적 지평까지도 시야에 넣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함의를 음미하며, 책의 방향을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평가를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푸코의 실제 입장은 모든 일반화된 이론,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종래의 개념이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벤느의 수사학적 문장들은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둘째, 역사서술과 관련하여 푸코는 어떠한 시대도식을 전제하고서 작업을 했는가이다. 푸코는 주로 ‘근대’를 이해하고자 했으나 그의 작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른다. 이 과정에서 푸코가 생각하는 시대적 특징이 있고, 각 시대가 다른 시대로 어떻게 이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도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역사가로서 푸코의 사유를 들여다본다면 푸코의 도식을 알 필요가 있다(이 점에서 『안전, 영토, 인구』가 가장 중요한 책이다). 그러면 벤느가 누락한, 회의주의적 역사가 푸코가 무비판적으로 전제한 내용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셋째, 푸코의 방법론은 어떠한 학자를 참조하며 만들었는가이다. 벤느는 니체의 계보학을 강조하지만, 그 자신이 규정했듯이 푸코는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해석학 전통에 서 있다. 이때 주목할 만한 대상은 독일의 신칸트주의 사상사가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이다. 영미권에서도 최근에야 카시러의 해석학과 푸코의 연관성이 주목받고 있는데, 푸코가 참조한 대상을 통해서 푸코의 사유 형성을 더 정교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