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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이 책을 읽은 내 관심사는 중국 고대사상의 사회적 맥락을 짚는 것이었으므로, "제8장 패자와 무사: 춘추시대의 사회 변모"부터 "제10장 정치인 사상가: 최근 발견된 문헌을 통한 조명"만 집중적으로 보면 될 터이지만 좋은 책이 늘 그렇듯 다른 주제와도 연결해서 읽을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저자의 머리말에서 한 단락을 뽑아보겠다.

"중국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나는 항상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비교론적 틀로 인류 보편적 경험의 일부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농경 생활 방식의 시작,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조직-수장사회의 형성, 도시 문화의 출현. 국가의 발생, 관료제와 행정기관의 출현, 그리고 제국의 형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구절은 즉각 <옥스퍼드 세계사> "Part.2 점토와 금속으로: 농업의 출현부터 '청동시 시대 위기'까지 발산하는 문화들-기원전 1만 년경부터 기원전 1000년경까지"를 떠오르게 한다. Ch.4 "농민의 제국들"이란 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기원전 제5천년기부터 제3천년기까지 서로 멀리 떨어진 세계 각지에서 우리는 공통 경험을 통해 발산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런 공통 경험으로는 정착지의 조밀화, 인구 밀도의 증가, 사회적 범주와 정부 기능의 증가, 국가의 출현과 제국으로의 변모, 그리고 갈수록 다변화되고 전문화되는 경제 활동 등이 있다."

리펑의 책은 양사오 이전 (BC 6500~)부터 시작하고, 서주시대가 1045~771BC이므로 <옥스퍼드 세계사> "Part 2 점토와 금속으로"의 시기와 겹친다. 그렇다면 리펑의 책 머리말에서 추릴 수 있는 주제는 '농경 사회에서 제국으로의 이행', '국가의 발생' '관료제와 행정기관의 발달' 등인데, 우리는 <옥스퍼드 세계사>를 통하여 같은 시기 다른 국가의 사례는 어떤지 정리할 수 있겠다.

'제국으로의 이행'이라는 주제는 또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제국>과 비교할 수 있는데, 뮌클러는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역사상 국가들이 어떻게 제국으로 불릴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국가의 발생'이라는 주제는 <옥스퍼드 세계사> Part 3. 제국들의 진동 중 "Ch.7 성장: 사회조직과 정치조직 - 기원전 1000~기원후 1350년"과 비교해서 읽을 수 있다. 이언 모리스는 "저가 국가"라는 개념을 통해 이집트, 주왕조 등을 분석한다. 저가 국가란, 수입을 많이 얻지는 못했지만 국가 운영에 필요한 비용도 적었던 국가를 지칭한다. 국가가 지출하는 비용이 적었다는 사실은 국가가 수행하는 일이 적었다는 것과 국가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언 모리스가 지적하듯 "국가가 약하다는 것은 농민들이 정부에 세금을 적게 내거나 전혀 안 낸다는 뜻이었다." 주가 이런 저가 국가에 속했다. 주의 "신임 제후들은 왕에게서 받은 영토를 직접 다스리며 각자 원하는 대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왕의 요구 사항은 자신이 전쟁을 벌일 때 '많은 제후들'이 각 제후국의 분견대를 거느리고 참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전쟁은 마친 뒤 왕은 제후들에게 약탈품을 분배했다." 국가의 역할이 적으므로 국가와 백성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춘추시대는 이러한 경향이 뒤바뀐 시대였다. 현(縣)이라는, 주의 봉건제와 같은 혈연적 네트워크망이 아니라 국가의 최고통치자가 관리를 보내 직접 관리하는 행정 단위가 확산되면서 "국가는 이전 어느 때보다 농민에 가가이 갈 수 있었고 농민도 그러했다." 국가와 백성 사이의 가까워진 거리는 "개별 농민들이 직접 부담하는 일반적인 조세와 군사 복무"로 이어진다. 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경지역에 설치되었는데, 국가는 이런 지역들을 개척함으로써 조세 수입과 노동력의 공급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춘추시대는 전쟁과 개발 등으로 국가가 지출하는 비용이 주와 다르게 급격히 늘어난 반면 현 제도를 통해서 벌어들이는 수입도 그만큼 늘어난 시대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춘추시대 이후 중국은 '고가 국가'로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고가 국가의 특징은 군사적 승리로 취하는 전리품에 의존하는 약탈경제 대신 "관료제를 창안해 세금을 거두고 병력을 직접 고용함으로써 전리품을 모두 국가 소유로 거두"(옥스퍼드) 것이다. 이로써 고가 국가는 확장 가능성도 훨신 커졌는데, "가장 큰 저가 국가였던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와 9세기 아시리아는 각각 면적이 1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가 300~400만 명이었지만, 기원후 175년경 로마와 중국은 각각 면적이 500만 제곱킬러미터에 인구가 5000만 명이었다." 제국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춘추시대 고가 국가로의 변모가 제국으로 가는 기틀을 놓았자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국가의 발생'이라는 주제에 학자마다 다양한 견해를 품고 있는데, 이는 국가가 무슨 역할을 수행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국가는 사회 내부 투쟁 조정의 수단으로 보는 것,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여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수단으로 보는 것, 마지막으로 의례체계를 집중화하기 위해 사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내적 지향의 최종 산물로 보는 것.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론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국가론을 연구한 밥 제솝의 <국가 권력>이나 <전략관계적 국가 이론> 등이 국가론의 기본 서적으로 읽어볼 만하겠다. 이 분야에 완전히 문외한이라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로 기본 주제들을 다잡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유시민의 책은 기본 그 이상의 역할은 충족하지 못하므로 다른 책으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 삼아야 하지만)



이렇게 연관된 독서로 주제가 점점 확장되는 것은 책을 읽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혹은 쓸모도 없는 지식 채우기라는 최악의 절망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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