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온오프라인 서점에 항상 하얼빈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라 있었고 표지에는 김훈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되어 나왔을 때 부터 계속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이제서야 읽게 된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가벼운 책이지만 이 책의 무게감이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또한 김훈 선생님의 작품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두 번째 부담이었다.
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볼 때면 너무 몰입을 한 나머지 다 끝나고 나면 후유증이 커서 몇 일 동안은 그 세상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기 때문에 때로는 괴로울 때도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후유증이 적을 것 같은 것들만 골라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하얼빈]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봐야지 라는 마음의 압박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미루다 미루다 이렇게 읽게 되었다.
나는 십년 전보다 더 오래 전 김훈 선생님의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를 읽었었는데 그 때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 결코 가볍지 않은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때는 지금보다 어려서 그 무게를 더 무겁게 느낀 걸 수도 있지만 너무 힘들었던 기억에 이 책 또한 그럴까봐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는 이 책을 펼쳐 들었고 너무 겁을 먹어서 인지 오히려 책은 술술 읽혀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라는 책을 먼저 읽었었는데 그 책에서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그의 사상, 그리고 그의 사후까지 전체적으로 훑을 수 있었고 어떠한 은근한 강요없이 온전히 나만의 판단으로 안중근 의사를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정의하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하얼빈의 책장을 열고 보니 이 책을 덮는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먼저,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결국 우려하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이다. 하루종일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게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안중근 의사를 향한 나의 감사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이러한 후유증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에서는 그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묘사 했다면 [하얼빈]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행동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나에게 주관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중근 의사가 될 수 있게 그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온전히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해 주는 것 같다. 소설속에서 표현되어 있는 그의 한마디에 그의 생각을 느끼고 그의 숨겨진 마음까지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안중근 의사가 되었던 것 같다고 말을 해도 될 지 모르겠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는 순간에서 조차 서두르지 않고 조급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평온함을 유지하며 세밀하게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속된말로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내가 유치원때부터 존경하고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큰 산과 같았던 분이 31세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부터였다. 항상 큰 어른과 같았던 안중근 의사의 나이를 이미 내가 훌쩍 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는 내 마음속에 안중근 의사에 대한 또다른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던 그런 신화와 같은 위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안중근 의사보다 나이도 많고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나는 아마도 부끄럽지만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무섭고 두려워서 이지만 분명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었고 대의를 이루었다. 그가 이러한 대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는 열렬한 지지와 응원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너무나도 외로운 싸움을 했었던 것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심지어 천주교에서마저 버림받은 듯한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는 당당했고 당찼고 원하는 바를 이루내었다.
반대로 내가 김아려 여사였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난 분명 남편의 바지가랑이를 잡았을것이고 조국을 살리지 말고 너의 처자식부터 좀 살리라고 매달렸을 것이다. 내가 조마리아 여사였더라면 우리 아들 살려내라고 대성통곡을 하고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결 했을 것이다. 이는 몇번이나 다시 생각해도 나는 그랬을 것이다. 그는 천주교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가족에게는 인정을 받고 가족과는 그 뜻을 같이 했으니 그나마 그에게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안중근 의사의 생애가 아닌 거사를 치루는 동안의 일주일. 그 짧은 일주일동안에 느꼈을 안중근 의사의 감정과 안중근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무덤덤하게 빠르지 않은 전개로 표현하고 있는것이 꼭 안중근 의사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로 인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인간 안중근, 안응칠의 역사는 그저 슬프고 아릅답고 고귀한 가슴이 뜨거운 한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이번 김훈 선생님의 글이 쉽게 읽혀진 이유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생각 해 보았는데 김훈 작가님도 오랫동안 고민하고 가슴에 숙제처럼 가지고 계시다가 더이상 미루지 못해 집필을 하셨고 나 또한 이 책을 가볍게 읽기 싫은 마음에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숙제처럼 여기다가 더이상 미루지 못해 읽게 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진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은 만큼 감정의 동요없이 오롯이 안중근 의사를 내 가슴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벅찬 마음을 가슴에 간직한 채 이번엔 영화관으로 향하려고 한다. [영웅]을 보면서 내 마음속의 안중근 의사를 또 한번 새롭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