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다. 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이 책 표지의 가족처럼 경악하게 된다.
앞, 뒤 면지는 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치칙'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흐르던 줄무늬 같은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민수네 가족은 텔레비전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눈 아래는 다크서클이 있고, 아침엔 늘 허둥대며 출근하고 등교한다. 엄마의 하루는 온통 텔레비전과 함께 하고, 집에 있는 아빠는 텔레비전을 향해 있다.
고릴라가 동물원을 탈출해서 민수네 집 거실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이웃들은 겁에 질려 떨고 있어도 이 가족은 일렬로 앉아 식사를 하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런데 리모컨 쟁탈전을 하던 중, 텔레비전이 고장 나고 말았다. 수리 기사님이 오기까지 세 식구는 황량한 사막에 앉은 기분이다.
투덜대며 밀린 이불 빨래를 시작하자, 민수는 슬슬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욕조는 낙타처럼 커 보이고, 집안일이 귀찮은 아빠를 골려 주려고 시작된 일이 놀이가 되어버린다. 적막한 사막 같던 집안은 괴물이 나오는 정글도 되고, 비빔밥 먹을 땐 초원도 되고, 그림자놀이를 할 때는 별이 가득한 밤의 언덕도 된다.
한바탕 즐거운 밤을 보낸 다음날, 수리 기사님이 오시겠다고 전화를 걸어왔지만 민수는 방문을 거절하며 엄마 아빠한테 의미심장한 웃음을 띤다.
사막의 경치를 그린 부분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작품을 빌려왔다.
달리의 그림은 심리학적인 해석이 다양한데, 이수영 작가님을 만나게 되면 이 그림을 접목한 이유를 여쭤보고 싶다. 다만 내 나름으로 엮어보자면, 결국은 현실(의 시간) 따위는 잊고 유년의 시간으로 돌아가 꿈과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 의미는 아닐까 싶다.
어른들은 힘들고 피곤하다. 아이들도 그렇다. 아이들이 열심히 보낸 하루를 위로받는 방법은 부모와의 살붙이기와 놀이일 것인데, 부모들의 방식은 엄연히 아이들과 다르다. 쉬고 싶은 것이다. 서로의 방식은 너무도 다르고, 결국 함께 택한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부모가, 텔레비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어떻게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 즐겁게 살아갈지 방법을 잘 모른다. 이 집에서는 운이 좋게도 텔레비전이 배제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소소한 일상이 온 가족에게 놀이처럼 다가오는 하루가 되었다.
매일은 어렵겠지만, 가끔은 부모나 어른이라는 사실을 접어두고 아이처럼 유치해 보면 좋겠다.
예전에 어떤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눈물은 사라져가고 (하 하 하 하) 우린 꿈을 꾸듯 언제나 행복하게 이리저리 날아갈 거야...
아이들처럼 살면 좋겠다.
텔레비전 수리 기사입니다. 오늘 몇 시쯤 방문하면...
민수는 딱 한마디만 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어요.
우리, 텔레비전 안 고쳐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