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과 사람 냄새로 가득한 책,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속설에 “남자는 태어나 세 번 운다”는 말이 있다. 남자는 살면서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만 울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의 출처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 속설이 한국인의 입에 자주 회자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대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한 한국인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가 화병을 한국 특유의 문화적 현상으로 규정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인이 자기감정을 다루는 데 서투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풍토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라는 개념은 생각만큼 익숙하지 않다.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는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트라우마는 외부의 충격으로 생겨난 마음의 상처이다. 이런 증상은 개인에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치유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은 개인적ㆍ사회적 트라우마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정신적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도 모른 채, 그것을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세월호 참사 이후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세월호의 비극이 남긴 트라우마 앞에 “잊지 않겠다”는 강박과 “이제 그만하라”는 외면으로 대응했다. 물론 참사 이후 사회구조적 대안이 쉼 없이 제시되고 있지만, 세월호가 남긴 트라우마를 어떻게 어루만질까 하는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트라우마’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우리는 어떻게 사회구조적 접근에 갇히지 않고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을까. 시인 진은영 씨와 정신건강전문의 정혜신 씨의 대담집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창비, 2015)는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대담을 진행한 진은영 씨는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많은 고통의 문제들이 신이나 불운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상처임을 인정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이 책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겪는 심적 고통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자본과 국가에 의해서 삶이 파괴된 그들에게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 일상조차 ‘금기’가 되었다. 대신 슬퍼도 슬퍼할 수 없고, 아파도 아파할 수 없는 고통이 그들의 삶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부터 세월호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큰 고통과 불행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무기력한 우리 자신을 못 견뎌”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담자 정혜신 씨는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이 생각만큼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녀가 내민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갑작스럽게 희생된 아이들에 대해 사랑과 애도의 감정을 ‘완료’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가 너무 슬플 때는 슬픈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슬퍼야 할 때 슬프지 않으려 하면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마음껏 슬퍼해야 합니다. 슬플 때 더 안정적으로, 더 편안히, 더 실컷 슬플 수 있도록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그런데 과연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지난 한국 현대사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국가에 의해 삶과 일상이 파괴된 이들이 적지 않다. 독재정권에 의한 고문피해자와 희생자, 용산참사 피해자,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등. 사회적 트라우마는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 깊숙이 형성되어있다.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이미 그런 트라우마들을 대면했던 정혜신 씨가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해고노동자든 고문피해자든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든 본질적 고통은 똑같습니다.” “자기 상처를 인식하고 인정해서 치유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책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메커니즘의 핵심이 전문 의학과 위대한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고통 받는 이들이 삶의 본질을 성찰하여 일상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었지만 살면서 잃어버린 온전성”을 되찾게 하는 일이다.
“삶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 인간의 생존과 안정감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그렇지만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는 것. 그런 기본적인 것을 다시 구현함으로써 자기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고 삶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거죠. 그래야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결국 진은영 씨의 말처럼 대담자 정혜신 씨는 “이웃집 천사가 되기 위해 위대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변하지 않았다. 다만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다가가고 사랑하는 일에도 배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것이다. 이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무력감을 느끼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우리가 그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부여한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치유 공동체를 확장하고 뒤틀린 인간의 온전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온정과 사람 냄새로 가득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창비의 ‘책읽는당’ 프로그램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