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이었던가, 정지우 작가에게 문학과 철학 관련 강의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그가 몇몇 철학 강의와 김진영 선생님의 문학 강의를 들어보라고 추천해 줬었다. 그는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가 자기의 강의와는 비교도 안되게 훌륭하다면서 꼭 들어보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아트앤스터디에서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를 찾았다. 당시 <위대한 개츠비>가 왜 위대한 지 골몰하고 있던 터라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 중 그에 관련한 강의를 먼저 들었다. 강의를 듣고 분명한 답을 얻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데이지의 높은 목소리톤 등 내가 캐치하지 못한 세부적인 부분들에 관한 김진영 선생님의 언급은 개츠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었다.
한번은 그가 유투브에 채널을 만들어 낭독을 한다기에 그 채널을 구독했다.(암투병 중인지는 몰랐다) 그리고 한 동영상에 소심하게 댓글을 달았는데 '목소리가 조금 더 잘들렸으면 좋겠네요' 였다. 그런데 그가 내 댓글에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줬다. 소리를 조금 높였는데 이제는 좀 잘 들리시지 않냐고.
생전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물론, 그를 따르는 제자들까지. 그 나이까지 물처럼 투명한 순수함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문학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드문 문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어떤 모범을 보여주었다.
<아침의 피아노>를 방금 전에 다 읽었다. 암투병중이었던 그가 생을 마치기전에 남긴 짧은 메모를 모은 산문집이다. 책의 형태가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와 흡사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어떤 글을 썼을까는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지만 특히나 그가 죽음 직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시간이 추상적인 길이가 아니라 실체적인 형태와 질량을 가진 존재 그 자체로 다가온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응급실에 있으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한 감정을 느낀다는 말도.
내용 자체의 새로움보다는 생전에 그를 알았고 그의 고결하고 정제된 언어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이 될만한 책이다. 이 책은 5월, 6월, 7월, 8월 그의 임종 전까지 시간 순서대로 메모를 배치해 놓았는데, 점점 마지막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을 알리는 5월이라는 두글자, 6월이라는 두글자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인생을 하루라고 친다면 내 인생은 몇 시쯤일까. 오후 네다섯시 정도 될까?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은 추상적인 문장들이 많다. 추상적인 글은 대체로 모호하고 흐릿하며 감상적이다. 그리고 나는 추상적인 글을 읽을 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편이다. 진실이 깃든 추상적인 글이라 할지라도 뭔가 불순물이 섞여있는 듯한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있다. 김진영 선생님이 거짓말을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글에 깃든 어떤 고결함과 고상함 때문에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메모 몇 편을 남겨둔다.
150.
프루스트의 공간
프루스트의 소설 공간은 둘이다. 하나는 생의 공간. 이 공간은 점점 더 수축하고 그 끝에 침대가 있다. 이 침대보다 더 작은 공간이 관이다. 또 하나의 공간은 추억의 공간. 이 공간은 생의 공간이 수축할수록 점점 더 확장되어서 마침내 하나의 우주를 연다. 그것이 회상의 공간이고 소설의 공간이다.
163.
레닌은 말했다고 한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오직 저 종려나무만이 푸르다."
168.
종소리 사라져
꽃향기 울려 퍼지는
저녁이로세
그런데 꽃향기가 먼저일까 종소리가 먼저일까. 이 또한 부질없는 질문일 뿐. 다만, 종소리도 꽃향기도 '저녁'보다 '아침'이면 더 좋지 않을까.
177.
K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객혈 때문에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 그러면서 그는 자세한 병세와 응급실 사진들을 보낸다. 심지어 침대에 누운 셀프포트레이트도 있다. 이번에도 나는 그가 경이롭다. 그는 늘 자기를 객관화할 줄 안다. 그래서 늘 자기에게서 머물고 자기를 지킨다. 나는 늘 나를 주관화한다. 그래서 늘 내게 머물지 못하고 나를 지키지 못한다. 나는 분명 그보다 더 많이 공부했지만 스승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그다. 부끄러운 일이다.
196.
병원 가는 아침. 비가 내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카페의 테라스를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미소. 그래. 지난날 나는 이런 날 저런 테라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리라. 테라스에 잠시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젖어가는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으리라. 그야말로 무연히, 아무 생각 없이 사방으로 나를 열어놓은 채....... 그때의 행복감, 그때의 자유를 나는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202.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김진영 선생님을 생전에 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그가 남긴 문학 강의를 찾아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