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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i18의 서재
  • 고장 난 기분
  • 전지
  • 16,110원 (10%890)
  • 2025-04-15
  • : 730

고장 난 기분이라니-

제목을 듣자마자 일단 반가움이 앞섰다. 불안, 어색함과 친한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이니까.

무언가를 준비할 때부터 설렘보다 긴장감이 먼저 다가오는 편이고, 그것을 누구 앞에서 발표한다는 건 마치 낯선 행성에서 홀로 우주전쟁에 참전한 듯한 극도의 공황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혼자가 아니라는 게 다행인 기분이다.

전지 작가님이 만화, 미술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걸 sns에서 뵈어 알고 있었는데 이토록 흥미로운 책을 내셨다니! 안볼 수 없지 않은가.

 

고장 난 기분은 인트로를 시작으로 6개의 고장경험 공유와 7가지의 나아지기 연습, 새드엔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일기를 엿보는 듯 굉장히 솔직하고 소탈하다, 귀여운 소제목들도 깨알 재미다. ‘아직 한 알 남았다. 난 떨어요, 나 떨어요!, 튀겨진 나의 아몬드’

제목마다 작가님의 발표울렁증, 사회불안증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경험담을 유쾌한 필체로 만화와 글로 풀어놓았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상대를 웃기는 것도 좋아하지만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때면 떨림, 머리가 꽁꽁 굳어서 이야기가 납작해지고 두서가 없어지며 어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말을 흘리며 그냥 상황을 포기하게 되는 그런 경험들을 말이다.



책을 살펴보면

인트로부터 공감대 제대로-! 소규모 북토크나 모임에 가면 으레 하기 마련인 감상나눔의 시간. 즐거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나 홀로 초냉각상태로 긴장. 초긴장. 쿵쾅쿵쾅. 가끔은 손까지 떨려와 정말 난감하다. 다른 분들의 위트섞인 멋진 감상평을 들으면서 내 차례가 되면, 왜 그런지 하려던 말의 10분의 8 또는 9 정도는 다 날아가고 주섬주섬 두서없이 겨우 몇마디하는 그 기분. 내 경우엔 차라리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초중반에 해버리는 게 낫다. 처음은 말고 한 세 번째 정도? 차례가 늦어질수록 다른 분들과 같은 감상의 내용은 빼야한다는 생각과 빨리 끝내야한다는 압박감까지 더해져 엉망이 되기 일쑤이니까.

 

거의 모든 증상(?)이 나와 비슷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꼭 집어 추천할 파트는 ‘나의 튀겨진 아몬드’이다. 이것은 각성을 멈추지 않는 편도체에 관한 이야기다. 나 또한 과거에 상담을 통해 내 아몬드가 통제불능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 중 인상깊은 내용을 옮기려 한다.

 

『그런데 이 편도체 반응은 흔히 말하는 정신력과 의지로는 이겨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때 ‘나는 편하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 나는 위험하지 않다.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라고 아무리 자신을 설득하려 해도, 편도체의 반응은 논리적이지 않기에 몸은 그대로 얼어붙고, 마음은 상황을 회피하거나 포기하고 싶어진다.

대뇌 속 아몬드 모양의 이 작은 부위는 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떠한 수용이나 새로운 시도’로 부정적인 기억을 조금씩 없애고 빈 부분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다시 채워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중략-

 

그래서 나는 앞으로 오프라인 작가와의 대화나 카메라를 켜는 온라인 공유회가 있을 때, 슬슬 올라오는 긴장감을 그저 묵직하게 받아들여 견뎌보기로 했다. 내가 전할 말을 텍스트로 정리해놓고 어떤 태도로든(떨든) 그것을 전달했으면 그 자리가 끝난 후 복기하지 말고 끝내자고 생각했다.

 

-중략-

 

그냥 내가 굉장히 긴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발표 즈음에는 명상이나 심호흡을 하며 묵직-하게 그 긴장감을 느껴보고자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도 생각하지 않기. 그냥 나는 원래 ‘떠는 사람’인 것으로 못박아두기. 그래야 내가, 즉 내 편도체가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좀 잔잔해질 수 있다. 』

 

발표를 하면서 겪은 수많은 실패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 역시 ‘준비한 텍스트를 주어진 시간 내에 모두 또박또박 읽고 내려오겠다.’였는데 같은 생각이었다는 게 소름돋는 공감 포인트다!

보통은 자연스러운 발표를 위해 마음속 다짐과 함께 연습(텍스트 읽기)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지만 그래도 실패가 더 많은 편이다.

한번은 생각과 다르게 호흡조절이 안돼서 랩하듯 작고 빠르게 말하고 내려온 적도 있는데 그때는 유체이탈하듯 마음속으로 ‘나 또 조절안되게 떨고 있네.’하며 관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지원사업 중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Mini-conference 발표에서 또박또박 읽었더니 작은 상까지 받은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도 발표뿐 아니라 다같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매번 떨고 될 수 있으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중요한 건 고장 난 상태를 너무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는 태도인 것 같다-


이 책은 울렁증, 만성불안 등으로 고 장난 사람들에게 용기와 사회적 일체감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정신과나 심리상담과 다른 형태로, 불안과 떨림이 잦은 사람들도 서로에 대해 떠올리며 심리적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있으면 자연스레 나오는 그런 편안한 에너지 말이다.


책을 읽으니 작가님의 모습이 상상됐다. 중고등학교때까지는 고장 난 기분을 느끼지 않으셨다고 하니 분명 극내향인은 아닐 것 같다. 두루두루 친구도 많고 성격 좋은 밝은 사람일 것 같은 느낌. 책을 다 읽고 나니 내적친밀감이 제법 쌓인다. 마치 같이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친구처럼-! 

 

‘불안을 완전히 극복해버리겠다!’보다는 반려불안을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할지, 통통 튀는 아몬드(편도체)를 받아들이고 이해해야겠다는 연습. 이런 것들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어디선가 다른 곳에서도 시도하고 있을 사람들이 갸륵하고 든든하다:)



그냥 내가 굉장히 긴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발표 즈음에는 명상이나 심호흡을 하며 묵직-하게 그 긴장감을 느껴보고자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도 생각하지 않기. 그냥 나는 원래 ‘떠는 사람’인 것으로 못박아두기. 그래야 내가, 즉 내 편도체가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좀 잔잔해질 수 있다-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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