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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을 까는 여자들
  • 신민주.노서영.로라
  • 13,500원 (10%750)
  • 2022-02-25
  • : 170

당신이 만약 이대녀라면('삼대녀'도 상관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라는 마음보다 '그래, 역시 내가 맞았어'라는 오만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이 온통 젊은 여자들에게 겸손을 강요하는 판에 스스로 겸손해지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오만하고 건방지고 되바라진 여자들이 만드는 세상을 이제는 시도해 보아야 하니까. 구절판에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신, 구절판은 걷어차고 새 판을 까는 여자들이 되자.
(10쪽, 「구절판을 걷어찰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에서 말하는 구절판 행사란 이런 것이다. 특정 이슈를 다루는 토론회에 온통 남성 패널을 부르고, 여성은 구색 맞추기로 한 명만 섭외하는 행사. 구절판 행사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남성들에게 '이대남'이라는 명칭이 먼저 붙었고, 그 반대 항으로 만들어진 개념이 '이대녀'라는 설명도 일러주고 있다.

"오색찬란한 다양한 반찬들 사이에 뚱하게 껴 있는 밀전병이 되어 모든 여성의 이야기를 대변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세 저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향이 모든 2030여성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 덕분에 나도 마음 놓고 이 책을 완독했다. 여성문제 관련 책을 읽으면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 극소하게나마 존재하는데, 난 그때마다 이유 모를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없진 않았으나 이번엔 좀 뻔뻔한 상태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20대 여성으로서 국회 보좌관 업무를 수행하거나,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며 겪은 일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선하다는 말이 아주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한 경험담이었다. 20대 여성'도' 국회 보좌관을 할 수 있구나, 그 사실 자체를 몰랐던 건 아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 턱이 없었으니까. 마치 영화 <히든 피겨스>를 처음 보았을 때 NASA에도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존재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한편 남초 사이트의 억지 논란 만들기에 가담했던 기업들•언론들의 작태를 지적하거나, 'N번방 사건' 이후 제기된 '알페스 처벌법' 논란이라든가, 총여학생회의 잇따른 폐지 사태로 보는 대학 내 백래시 현상 등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여성혐오 문제들도 잊지 않고 짚어 주었다.


마지막에 실린 에필로그 인터뷰 「또 악플이 달리겠지만」의 대화도 인상적이었다. 글을 쓰던 중 느껴야 했던 어려움을 얘기하며 저자들은 또 한 번 신중한 태도를 내비친다.
"실제 존재하는 20대 여성들을 한 집단으로 뭉뚱그려서 말하기에는 서로 너무 다른 것도 현실이라서. 단일하지 않은 이 사람들을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복잡한 고민이 들었어."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그들이 페미니스트들인지 이대녀들인지 혼동될 때가 있었어. 이대녀들 중에도 분명 안티페미니스트가 있을 것이고 (…) 하지만 적어도 이대녀들의 관심사와 페미니즘의 사안들이 어느 정도 겹칠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어."


내가 대선 후 맞닥뜨린 최대 고민 또한 저 인터뷰 안에 들어 있었다. 안티페미니스트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들과 건설적인 공론을 펼치는 게 가능은 할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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