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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 강혜빈 외
  • 10,800원 (10%600)
  • 2022-02-14
  • : 875
시에 대한 감상평을 남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런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나는 시보다 소설과 산문을 즐겨 읽는 사람이지만…"
"나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솔직해지자면 나는 소설도 산문도 뭔지 잘 모른다. 그냥 다짜고짜 읽는다. 그런데 유독 시에 대해서만 아쉬운 소리를 해 온 심보가 뭘까. 나 같은 독자 때문에 시를 대하는 각박한 인식이 더 불어나는 건 아닌지 괜한 염려까지 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런 구차한 말이 나올까 봐 내심 걱정했다. 외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뜻밖의 수확을 얻어 냈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한 무더기였다.

동료 시인들에게 점심시간에 만나서 함께 시를 쓰자고 권하는 시, 점심 산책을 하며 "사람들의 활기" 속에서 "세계를 메우고 있는 비참함"을 홀로 생각하는 시, 그와 반대로, 인파로 복작거리는 공원에서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햇살이 푸지면 나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된다"고 고백하는 시…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면면이 다채롭게 묘사돼 있었다.

빛과 어둠을 대비시키는 표현들도 종종 등장한다. "나의 점심은 네게 한밤이었다"(백은선, 「향기」)는 시구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글 하나가 떠올랐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에서 엄지혜 작가가 '한낮'과 '대낮'의 차이점을 헤아려 보는 구절이었다. 청탁 메일을 보내느라 진이 빠진 저자가 '한낮의 우울'을 만끽한다는 내용의 산문인데, 나는 여기서 또 다른 엉뚱한 생각이 든다. '한낮'과 '한밤'과 '대낮'은 사전에 실려 있는데 왜 '대밤'이라는 단어는 없을까 하는…

여하튼 다시 힘 빼고 처음부터 한 편씩 읽어 보다가 이 작품집을 관통하는 듯한 한 문장을 발견했다. 강혜빈의 「다가오는 점심」 중 한 구절이다.
"우리의 점심시간이 모두 에스에프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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