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마침표가 없다는 이 극적인 인상은 나를 주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시작도 끝도 없이, 희붐한 안개속을 걷는 것처럼. 발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진지한 걸음걸음으로,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각별한 노력이 요구되는 글.
그런데 또 그게 뭐라고. 그러면 좀 어때.
어느 순간 모든게 대수롭지 않아졌다.
그 마침표가 없는 문장들이 묘하게 운율을 타고, 반복되며
‘바임’으로, ‘순’으로, ‘엘리네‘라는 이름의 나무 배 위로
부지런히 나를 옮겨놓는 사이.
평범한 남자의 운 나쁜 하루로 시작되는 이 글은
글쓰는 이와 읽는 이 사이를 오가며
하나의 거대한 삶의 조각들을 맞추어 간다.
한 여인을 오래도록 연모하며 그 여인을 위해 기꺼이
낯설고 준비되지 않은 미래로 걸어들어가는 남자,
“야트게이르”
그의 삶을 중심으로 엘리네와 프랑크가,
(결코 프랑크였던 적이 없는 프랑크가)
그들의 삶을 또 다시 이어나간다.
쉼표만 가득한 글처럼, 쉴새없이 삶의 굴곡을 따라 흘러
서로의 서사 속에 젖어들어 모든 이야기가 맞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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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규정되는 나는, 정말 나인가?’
이름은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존재를 감추는 장막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바로 그 간극, 언어와 존재 사이의 틈을 응시하고 있다.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어떤 존재의 그림자를 껴안는 일인지도 모른다.
197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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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해문클럽>
세번째 도서였던 욘 포세의 <바임>.
어쩌면 나도 그의 글에 익숙해진 것인지 🥹
마냥 어렵다고 생각했던 선입견을
조금 깰 수 있었던 작품이다.
욘 포세가 처음이라면 <바임>은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초심자에게도 추천!
“ 삶은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것. ”
그의 문장속에 수없이 찍혀있는 그 쉼표들은
단지 문장을 이어가는 도구이기도 했지만
멈춤없이 흘러가는 삶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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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나는 숨길 수가 없었다, 내 목소리에 깃든 떨리는 사랑 같은 것을, 혹은 갈망 같은 것을, 그토록 큰 갈망, 그토록 오래된 갈망이, 내 안에 쌓여 더는 안으로만 간직할 수 없었기에 내가 방금 막 엘리네라는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 속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52
엘리네라는 이름이, 마치 공기 중에 맴도는 것 같았다, 영원처럼 오래도록, 이윽고 엘리네가 크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녀가 말했다,
네라는 말은 내 안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내가 그 말을 삼킨 듯했고, 그 말이 내 뱃속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어떤 거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 같았으며, 여느 평범한 네 같지는 않았다, 그건 마치 바로 옆에 서 있는 그 사람과 결혼하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할만 한 대답이라고 내가 상상했던 그런 네에 가까웠다, 53
우리는 거기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 갑판 위에 서 있는다, 지금, 반은 어둠에 잠기고 반은 빛 속에 잠긴, 이 한 여름 밤, 순의 부둣가, 나의 배 엘리네 위에서, 지금 우리는 서 있다, 손을 맞잡은 채, 마침내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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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나는 팔을 들어 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해, 그도 팔을 들어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데 마치 이제 잘 지내고 있다고 기쁨에 넘쳐 말하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바임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흔들어, 야트게이르가 있다고 느껴지는 그곳을 향해, 그리고 모든 것이 딱 알맞은 느낌이야, 하지만 누가 이런 나를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어쨌거나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래 야트게이르 말고는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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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그렇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내가 자주 생각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이상했다, 그렇다 이건 내 묘비에 새겨도 좋을 것이다, 내 삶을 요약해야 한다면, 말 그대로 요약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들릴 것이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고 160
나는 그녀가 이상한 방식으로 내 삶에 들어왔고 역시나 이상한 방식으로 내 삶에서 떠나버렸다고 생각했다. 166
#해문클럽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