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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의 꿈
  • 데니스 존슨
  • 15,120원 (10%840)
  • 2025-12-10
  • : 26,320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한 건지 박탈감을 심어준 건지 끝내 알지 못했다, p128

#기차의꿈
#데니스존슨

-
‘로버트 그레이니어’에게 기차에 대한 기억은
여섯살 무렵의 시절에서 출발한다.
부모님을 잃고 사촌들의 손에 이끌려
가슴에 목적지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단 채,
홀로 기차에 올라야 했던 여섯살 아이.
처음 보는 기차의 소리와 석탄을 태우는냄새,
그 압도적인 위용, 수시로 변하는 창밖의 풍경보며
며칠동안 대륙을 가로질러 고모님의 댁에 당도하고,
그가 원했는지, 아닌지도 모를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특별하지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았던 날들이었다.
서로를 가득 채워주는 꽃 같은 아내 글래디스와
갓난쟁이 딸 케이트와 함께 소박하지만 충분하게
이 세상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집을 떠나 며칠동안 철로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거대한 산불이 마을을 덮쳤고,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의 흔적도, 사람의 흔적도
모두 타버린 채 검게 그을린 집 터만 남아있었다.

가족을 찾기 위해 강가에서 야영을 하며
몇날 며칠을 헤매기도 하고,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무엇일까,
살면서 내가 어떤 잘못을 했던 것인지
그의 삶에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기도 했다.
애초에 답은 영원히 찾을 수 없을
질문이었지만 그는 계속 물어야만 했다.
찾을 수 없는 질문과 답을 가슴에 새기고
그의 집 터로 돌아간 그레이니어는
작은 오두막을 짓고 또 다시 삶을 살아간다.

-
한 순간에 모두 잃어버린 거대한 상실을 딛고
담담하게 다시 삶을 시작하는 남자.
어떤 기적적인 극복의 서사나,
삶의 위안 같은 것도 없이,
그저 낡고 허름한 오두막과 개 한마리,
말과 수레가 전부인 삶.
그에게 닥쳐오는 삶을 살아가는것이 전부이지만,
그 안에 가득 찬 고독 조차도 숭고하다.
어떤 허세나 꾸밈도 없이
여린 촛불 하나로 간신히
그의 삶 전체를 비추는 것 처럼
소박하지만 그 작고 사소한 빛이 모여
그레이니어의 삶을 이룬다.

이 짧은 소설 안에 담긴
한 남자의 삶은 결코 짧지 않다.
오히려 이 적은 분량에 어떻게
이런 깊은 슬픔이 담겼는지,
담담하게 말하고 담담하게 살아내는
이야기가 품은 비극에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이 삶이 운명이라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살아야 해서 살았을 뿐.
꿈 속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며 같이 눈물 흘리며,
아직 새싹도 되지 못한
여리고 여린 딸을 그리며,
대신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마음먹으며
그렇게 로버트 그래이니어의 삶이 저물어갔다.

+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더라구요!
저도 책을 먼저 읽고싶어서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몇 컷의 이미지만으로도 글의 쓸쓸함이 그대로 뭍어나는 것 같았어요.

마치 클레어 키건의 남자 버전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
길지 않은 분량인데 한 남자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문장의 깊이는 한없이 깊게 느껴졌습니다.

-
꿈에 기차를 자주 보았다. 특히 자주 나오는 기차가 있었는데, 그는 석탄 연기 냄새를 맡으며 그 기차에 타고 있었다. 세상이 휙휙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그 세상 속에 서 있고, 기차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런 장면이 어렴풋이 친숙한 것을 보고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임을 알아차렸다. 때로 자다가 깨어보면 스포캔 국제철도의 기차가 희미하게 계곡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꿈에서 들은 소리가 그것이었다. 86

글래디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널리 퍼뜨렸다. 그녀는 딸을 찾을 수 없어 슬퍼하고 있었다. 아이가 없으면 예수님의 품에서 잠들 수도 없고, 아브라함의 가슴에서 쉴 수도 없었다. 그녀의 딸은 영혼들의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고 여기 산 사람들의 세상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불타는 숲에 혼자 남은 아이였다. 88

그는 대체로 교회에 간 것을 후회하는 편이었다. 교회에서 그는 자주 울었다. 모이산 속에서 살 때는 자잘하게 할 일이 워낙 많아서 다른 데 신경을 쓸 틈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슬프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찬송가가 시작되면 기억이 났다. 120

#서평단 #독서기록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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