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진짜 미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뉴스를 봤다. 20대인 아버지가 20개월 된 의붓딸을 성폭행하고 학대해 죽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이었던 건, 아버지는 딸이 죽을 때까지 아이가 자신의 친딸이라고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얼마 앞서서는 친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부모의 뜻에 따라 친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여학생이 국민청원을 올려서 전국민의 공분을 샀던 일이 있었지. 영화 줄거리라고 해도 ‘개연성 없고 억지스럽다’고 안 믿을 것 같은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버젓이 일어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씁쓸함이 다 뭐야, 화가 나고 열불이 난다.
이건 그러던 차에 읽게 된 책이다. 친족 성폭력에 대한 책.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겨우 뉴스에서 이야기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괴롭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멀리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이 책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를 찍고 개정판까지 출간되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이야기를 공론화하는 진입로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공론화하고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고.)
이 책을 쓴 하인츠 페터 뢰어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 겸 심리 치료사로, 병원에서 일하며 친족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심리 치유를 오랫동안 맡아왔고, 그들의 치유를 위해 별별 방법을 다 써왔다고 한다. 이 책에 얼핏 거론되는 것만 봐도 역할극이며 호흡요법이며 안구운동, 편지 쓰기 등등 꽤나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치료법 끝에 저자가 도달한 가장 좋은 해답은 ‘동화 읽기를 통한 독서 테라피’였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가 피해자들과 함께 읽은 동화 한 편으로 시작한다. 독일의 그림 형제가 지은 <털북숭이 공주>라는 동화다. 그 동화 역시 친족 성폭력을 비유적으로 담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왜 이 동화를 고를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성폭력, 그중에서도 친족 성폭력이라는 비밀은 피해자에게 상처일 수밖에 없고, 아무리 심리 치료사든 의사 나부랭이든 피해자들이 아픈 상처를 처음부터 드러내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용기 내 보일 때가 있다면, 그건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을 만났을 때가 아닌가. 여기서는 <털북숭이 공주> 속 주인공이 피해자들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주었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이 동화에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동화만 읽는다고 끝은 아니고, 동화도 읽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치료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공감해주기도 하고, 치료사와의 꾸준한 상담도 필요하다. 그렇게 큰 상처가 어떻게 한 편의 동화로 씻은 듯이 나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뭐든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어찌되었든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치료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발걸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책에는 수많은 피해자의 절규가 배어 있는 듯하다. 그들의 아픈 경험이 속속들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그 절규는 아픔에 몸부림치는 절규가 아니라,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의 절규일 것이다. 그건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고 책에도 실을 수 있게 허락해주어 고맙다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감사의 말’에서 유추해볼 수 있을 듯하다. 치료사에게도 꺼내기 힘든 이야기인데 어떻게 책에도 싣도록 허락했을까? 그것은 “나는 이런 경험을 겪었고 이만큼 힘들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면 좋겠어. 혹시라도 이런 아픈 경험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해서 많이 좋아졌으니까 당신들도 그렇게 해 봐.” 하는 어떤 절실함이 깃든 메시지가 아닐까. 어떤 위로는 절규의 목소리를 띤다. 그들의 목소리를 다시 묻어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