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세이가 아닌 인문교양 분야의 책이다. 김제동이 혼자 쓴 책은 아니고, 김제동이 만난 일곱 명의 전문가와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 제목으로 검색하면 유튜브 영상도 나오는데 책을 읽고 보니 더 재밌다. ‘책에서는 이렇게 정리된 내용이 실제로는 이런 분위기, 이런 맥락에서 나왔구나~’ 하고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해서 두 매체를 넘나들며 봤는데 그렇게 하면 이해도 더 잘 되는 듯하다.
이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하루에 한 사람과의 대담을 읽어 내려가는 걸 추천한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의 책이지만 그렇게 하면 일주일 동안 야금야금 읽을 수 있고, 전문가마다 이야기가 다르니까 맥락이 끊길 걱정도 없다. 사실 가장 처음에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과의 대화가 있는데 첫 챕터부터 양자역학이라 살짝 뜨악했다. ㅋㅋ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 전자랑 전자핵을 열심히 그려가며 텍스트를 이해했다.ㅋㅋㅋ 어려운 얘기만 있는 건 아니었고, 과학계에서 가설을 검증하는 방식이라든지 과학자들끼리 협력하고 분업하며 일하는 모습이든지, 이렇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비하인드랄까 실험실 이야기도 실려 있어서 참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요즘의 코로나 이슈와 관련된 지적 재산권이나 SNS로 대표되는 현대문명에 대한 통찰도 인상 깊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영상에도 있어서 봤는데, 이 내용을 나누는 김상욱과 김제동의 정조가 약간은 쓸쓸하고, 뭐랄까 좀 네거티브한 면이 있었는데, 내가 요즘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과 잘 맞아서 깊이 공감하며 봤다. (내가 이래서 SNS를 안 해~)
요즘 핫한 건축가 유현준과의 대화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더 재밌었던 건 천문학자 심채경과의 대화다. zz 요즘 안 그래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고 있는데 같은 저자를 이 책에서도 만날 수 있어 너무 반가웠다. ^^ <천문학자는~>는 심채경 박사가 혼자 쓴 에세이라 심채경의 엉뚱한 상상이나 은근한 개그가 잘 녹아 있는데 <질문이~>에서는 완전 전문가 포스 뿜뿜! 사실 나는 고지식한 현실주의자라 SF나 판타지 장르도 별로 안 좋아하고, 외계행성이니 외계인이니 하는 건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심채경과의 인터뷰를 읽고 곧바로 외계인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다. ㅋㅋㅋㅋㅋ (사실 약간의 확신이 실려 있는 의심임ㅋㅋ) 그건 바로 심채경 박사가 ‘이 우주 어딘가에 외계인(혹은 그 흔적이라도)이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에 대해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근거들을 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는지 사회자 김제동도 “옥장판 팔았으면 바로 샀을 거”라고 말한다.ㅋㅋ 옥장판이라니ㅋㅋㅋㅋ 이렇게 불쑥불쑥 들어오는 김제동식 유머도 너무 재밌다. 심채경 편은 정말 너무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영상까지 내리 봤는데, 아마 ‘천문학자’에 대한 궁금증이나 신비로움, 별이라는 소재가 주는 낭만이 살짝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전문가들이 나와서 강의를 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tv쇼가 정말 많아졌는데 그런 와중에도 천문학자는 없지 않나? 그래서인지 정말 특별하고 흥미로운 인터뷰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이렇게 보면 다 인상 깊었던 것 같지만...) 경제전문가 이원재와의 인터뷰. 사실 나는 이원재 전문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러니 이원재 전문가가 기본소득을 주장한다는 건 더더욱 알 턱이 없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보고 (이원재가 생각하는) 기본소득의 의미나, 그것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너무나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확실히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오래 골몰한 분이라 그런지 설명도 깔끔하고 예시도 굉장히 적절하다. 이번 기회로 기본소득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지고 또 넓어졌는데, 기본소득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 인터뷰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기본소득 제도는 여기 나온 어떤 주제들보다도 현재의 대한민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선이 다가오고 있고, 유력한 대선후보인 이재명 지사가 주장을 해서 그렇겠지. 이재명 지사 아니었으면 나도 기본소득에 대해 더더욱 몰랐을 테니. 아, 그리고 이원재 전문가가 기본소득 이야기를 하며 어렸을 때 소록도에서 살았던 유년의 기억을 이야기를 하는데, 그저 심플하게 이야기하는 그 몇 줄이 참 감동적이다.
이밖에도 알쓸신잡에도 출연했던 정재승 박사가 들려주는 뇌와 마음 이야기, 과학커뮤니케이터이자 털보 관장인 이정모 관장이 들려주는 환경과 지구 이야기, 김창남 평론가가 들려주는 대중문화와 신영복 선생님 이야기 등등이 모두 재미있었고, 각각 다른 의미로 내게 꽤 깊게 기억되었다. 요즘 계속 가벼운 에세이 류만 읽어온 터라, 인문교양 분야나 이런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이해가 안 가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중간중간 사진도 있고 그림도 있어서 나름 쉬어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정확하고 깔끔하게 설명해줘서 너무 좋았다. 단순히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학계에서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할까. 관심만 있다면 배경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