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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숲님의 서재
  • 광암 이벽
  • 황보윤
  • 12,600원 (10%700)
  • 2023-06-22
  • : 816

우선, 문장이 참 맑다. 군더더기 없이 정곡을 뚫지만 거칠지 않고 단정하다. 한 번도 어려운 신춘문예에 두 차례나 당선된 이력의 작가답게 완숙한 경지가 느껴지는 문장이다. 잘 다듬어져 걸리는 데 없는 문장 덕에 책장이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은 선교사 없이 자생한 조선 천주교의 태동과 박해와 배교의 역사를 배경으로, 최초로 학문을 종교로 받아들인 조선 사람 이벽의 생을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벽의 종교인으로서의 성장과 순교의 역사를 드러내는 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 이벽을 실재감 있게 보여주는 풍부한 이야기성을 포함하고 있다. 스승과 벗들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 아내와 학문으로 교통하는 모습, 하인과의 인간적인 관계 등을 통해 인간 이벽의 일상과 성품을 엿보며 살아있는 모습의 그를 실감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조선 선비들의 토론 모습을 재현한 장면이다. 녹암과의 열흘 간의 강학 모습이나 이가환과의 천주교에 대한 토론 모습 등은 깊은 공부가 없이는 재현할 수 없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약용에 대한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나 이벽이 방에 갇혀 죽어가는 장면 등을 보며 작가의 상상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사유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문장들이다.

각 장의 단아한 제목들은 맛깔난 덤이다.

 

수많은 참고 자료 속에서, 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고뇌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지어갔을 작가의 노고가 손에 잡힐 듯하다. 다 읽은 후 서문으로 돌아와 이벽의 유서를 다시 한번 읽었다. 처음 읽을 때보다 한층 깊은 울림이 가슴을 채웠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시원하고 올곧으며, 기쁘다가 문득 슬프다.’는 김탁환 소설가의 평이 있는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서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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