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밤은 어둡다. 완벽한 어둠 속에 뭔가 터지는 소리, 총소리가 들린 후 다시 정적과 어둠이 내려앉는다. 넉 달 된 어린 딸은 아빠의 품에 안겨있고, 스물한 살의 그녀는 아기용품과 사전이 든 가방 두 개를 든 채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다. 그녀는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을, 자신의 작문 노트와 처음 쓴 시와 가족과 그리고 헝가리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완전히 잃어버린 날로 기억한다.
그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빈곤 속에 성장한다. 결혼 이후 정치적 이유로 남편, 딸과 함께 1956년 스위스의 뇌샤텔로 이주한다. 강제 수용소나 동물원을 떠올리게 하는 스위스의 난민 막사에서 그녀는 생각한다. 헝가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더 어렵고 가난했겠지만,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년, 글을 쓴 지 20년이 더 지난 후에도 여전히 프랑스어는 그녀에게 어려운 언어이고, 또 그녀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에 적의 언어라고 말한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 강제로 놓인 사람들의 고통을 그들 자신이 아니라면 누가 알 수 있을까. 집과 가족을 떠나는 일, 모국어를 잃는 일, 그리고 성인기에 다시 문맹이 되는 일.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라는 경계적 인간으로 살아온 서경식 교수는인간이 타자의 고난에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한다.(시의 힘_현암사) 자신을 위로하는 스위스인을 보며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스위스가 난민들에게는 사막(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과 같으며 어떤 이들은 끝끝내 이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고. 이 사회에 끝내 동화되지 못한 채 징역형이 예견되는 고국으로, 혹은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간다고. 그들 자신이 아니라면 그 선택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타자의 고난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의 어려움.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었던 시기에 이 책 문맹과 더불어 자주 생각했던 말이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p.9)
타고난 질병과도 같이 읽기에 몰두했던 그녀가 스위스에서는 5년이나 문맹 상태로 지낸다. 스스로도 어떻게 읽지 않고 5년이나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조국을 떠날 때 사전을 챙겨왔던 그녀.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떠나야했지만 소통의 끈이자 읽기와 쓰기의 통로로 삼을 사전만은 챙겼다는 사실이 그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위스에 도착했을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희망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희망을 이루기까지 그녀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버겁다.
단문 속에 응축된 그녀의 이야기는 읽는 이를 서늘하게 할 만큼 날카롭다. 세상의 이면과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_까치>과 <어제_문학동네>, <아무튼_지혜정원>등의 작품에서 그녀 단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문맹>이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 문학적이라고 했으나 번역자 백수린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암시와 공백으로 완성되는 그녀의 단순하고 투명한 문장들은 그 자체만으로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어제>의 추천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 작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최소한의 문장으로, 가장 강렬한 감정을 창조하여 독자를 베어버린다.라고. 그녀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접한 독자라면 두 사람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문장’으로 창조되고 ‘암시와 공백’으로 완성되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흥은 쉬이 잊히지 않으므로.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p.97)
모국어로 말하고, 최초로 익힌 글로 쓸 수 있는 축복을 자주 잊는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책들을 다 읽을 수 있는 자유를 큰 기쁨 없이 누린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을 읽으며 나의 읽기와 쓰기를 돌아본다. 축복과 기쁨을 잊지 말자고, 그침 없이 읽고 지치지 말고 쓰자고.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신형철)
아고타 크리스토프. 그녀의 고통이 배어 있는 글이기에 그녀의 작품이 힘을 갖는 건지 모르겠다. 고통스런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역설. 그런 역설이 곧 문학의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