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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숲님의 서재
  • 렉싱턴의 유령
  • 무라카미 하루키
  • 12,150원 (10%670)
  • 2006-01-13
  • : 2,93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독의 발견

 

  여자는 울었다. 스스로도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수백 벌의 옷이 즐비하게 진열된 방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토니 다키타니가 죽은 아내의 옷을 대신 입어줄 여자를 구해 아내의 옷방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부분을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과 비교한다. (느낌의 공동체_2011_문학동네) 개츠비가 데이지를 집으로 초대하여 셔츠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던 데이지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그는 무라카미가 피츠제럴드를 샘플링했다고 말한다. 다만 두 여자의 눈물의 의미를 구분하는데, 데이지의 눈물은 그녀의 허영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토니 다키타니에서의 눈물은 본인 삶의 고단함과 대비되는 옷의 눈부심에 대한 탄식이라고 말한다. 

 

  다키타니와 아내는 열다섯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희한할 정도로 말이 잘 통했다. 두 사람은 만나면 마치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이 하염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상에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엄마를 잃은 남자와 옷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 그 둘은 내면에 텅 빈 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2004년에 제작된 이치카와 준 감독의 동명의 영화 포스터는 빈방에 각자의 방식으로 앉은 두 남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통함’은 서로의 내면에 도사린 빈 방, 서로의 그 커다란 결핍을 무의식 중 알아채고 공감하며 깊어진 동질감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다키타니는 사랑을 만남으로써 고독을 발견한다. 사랑으로 채워짐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내부에 뚫린 빈방의 존재를 알아채게 된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내가 죽었을 때 그는 아내의 옷을 입고 자신의 곁에 있어줄 여자를 구한다. ‘습관으로 고독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던 그가 고독하지 않은 삶을 경험하고 나자 다시 또 고독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된 까닭이다. 다키타니는 아내의 그림자인 옷들을 버리지 못한 채, 아내의 부재로 인한 고독과의 직면을 유예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허망함을 깨닫고 옷들을 처분한다.

 

  다키타니의 아내는 옷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였다. 눈에 드는 옷을 보면 완전히 자제심을 잃고 몸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이나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옷 사는 걸 삼가라는 다키타니의 지적에, 꼭 뭔가에 중독된 것처럼 옷 사는 걸 멈출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새 옷을 사지 않으려 집 안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어쩐지 자신이 텅 비어버린 느낌, 공기가 희박한 행성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다키타니는 아내를 만남으로써 빈방을 채웠지만 그의 아내는 여전히 채우지 못한 빈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죽인 것은 황색 신호에 무리하게 교차로를 뚫고 달린 대형트럭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 내부의 빈방이었을지 모르겠다. ‘그저, 그저 단순히 참을 수가 없었다.’(p.147) 내면의 빈방을 옷으로 채우고자 했던 그녀의 갈급함이 끝내 그녀를 죽인 것은 아닌지.

 

  토니 다키타니는 토니라는 이름으로 인해 혼혈로 오인 받고 놀림당하며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이름은 그 사람을 드러낸다. 첫 이름은 자신이 지을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지어진다. 토니가 만약 토니가 아니었다면, 미군 소령이 아닌 그의 아버지 다키타니 쇼자부로가 그에게 일본인다운 이름을 정성껏 지어 불러주었더라면 어쩌면 토니의 삶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름으로 인해 자신의 본질과 먼 모습으로 살아나가게 된 토니 다키타니가 무리에서 멀어져 고독해진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토니 다키타니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그는 극히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고, 그로 인해 사상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토니 다키타니의 눈에 사상성 있는 그림들은 미숙하고 조악하며 부정확하게 보일 따름이었다. 세상의 모습을 변형시킨 그림들은 그린 이의 사고를 반영한다. 세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받아들인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니 다키타니는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가미하지 않는다. 다만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길 뿐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인성을 지녔지만, 그가 누구와도 현실적인 레벨을 넘어서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은 자신의 색채, 즉 자기라고 드러낼 수 있는 본질적인 모습이 없어서였을 것이다.(내부에 채워지지 않은 텅 빈 공간을 지녔기에.) 자신의 색채를 띠고 누군가를 만나 그의 색채와 어우러지고 변화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토니 다키타니의 절대적인 고독은 자신의 색채가 없고 그래서 타인의 색채를 알아볼 수 없으며, 타인과 만났을 때 접점에서 서로의 색채에 물드는 변화를 경험할 수 없었다는 데 본질적인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다.

 

  토니 다키타니는 결혼 후 시아버지가 연주하는 음악을 궁금해 하는 아내와 함께 긴자의 클럽으로 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러 간다. 토니의 아버지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모던재즈 시대로부터 일렉트릭 재즈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옛날 그대로의 재즈를 계속 연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토니 다키타니는 아버지의 연주에서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끼며 불편해한다. 그 음악 속의 무언가가 그의 숨을 답답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한다고 느낀다. 아버지와 그, 두 사람은 비슷하게 깊게, 습관으로 고독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세상과, 타인과, 본질적인 무언가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토니 다카타니가 사랑으로 내부의 빈방을 채우고 나자 이전의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아버지가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는 공기가 희박한 행성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p.147)

고독이 돌연 알 수 없는 무거운 압력으로 그를 짓누르며 고뇌에 빠지게 했다.(p.141)

주변 공기의 압력 같은 것을 조금씩 조정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p.151)

탐욕스러운 프릴 장식이며 단추, 어깨 장식, 장식용 주머니, 레이스, 벨트가 방 안의 공기를 기묘하게 희박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 고독이 미적지근한 어둠의 진액처럼 다시 그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p.155)

 

  다키타니의 아내는 옷을 사지 못하자 공기가 희박해지는 듯 느낀다.(p.147) 새 옷을 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상 징후다. 새 옷을 반품하자 그녀의 생도 마감된다.

 아내가 죽고 나자 다키타니는 공기의 압력을 조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아내와의 만남으로 고독의 새삼스런 무게를 느꼈던 그는(p.141) 아내가 사라지자 다시 예전의 고독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p.151)

 아내가 남기고 간 옷들을 보며 다키타니는 공기가 희박해짐을 느낀다. 아내 없이 살아가야 하는 날들의 힘겨움과 다시 고독으로 무거워진 그의 삶을 보여주는 부분이다.(p.155)

 

  아내가 죽은 지 이 년 만에 다키타니 쇼자부로가 간암으로 죽었다. 그는 오래된 재즈 레코드 더미를 남기고 떠났다. 아내의 옷들을 처분한 텅 빈 드레스룸에 아버지의 유품을 보관하던 토니 다키타니는 일 년이 지난 후 그마저도 정리해버린다.

 

  레코드 더미를 완전히 정리해버리고 나자, 토니 다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p.161)

 

  토니 다키타니의 마지막 문장을 보며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다음 문장을 생각한다.

 

고독은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어서 잠시 잊어먹을 수 있을 뿐이고, 행복은 늘 등 뒤에 있어서 단지 기억될 수 있을 뿐인 것인지.(슬픔을 공부하는 슬픔_2018.한겨레출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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