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계의 분더킨트로 불리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사랑의 역사>의 니콜 크라우스 부부. 그들의 두 성공작도 엇비슷한 느낌을 주는 공통 요소들이 있다.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어떤 대상을 죽도록 갈망하며 찾아나서고, 그 과정이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 같은 구성, 그리고 미소 뒤에 잔잔히 배어나오는 슬픔의 정서까지...
<사랑의 역사>는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못하는 레오 거스키 노인과, 아빠의 죽음 뒤의 상실감 속에서도 엄마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열네 살 소녀 알마의 전혀 다른 인생이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엮이면서 삶의 진실들을 발견해나가는 이야기다. '사랑의 역사'는 이 책의 제목이면서, 이 작품 속에 존재하는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거스키가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인 알마를 생각하며 쓴 원고의 제목이고, 원고를 훔친 그의 친구가 출간한 책의 이름이며, 우여곡절 끝에 우연히 이 책을 손에 넣은 이스라엘 청년이 아내(알마의 엄마)의 사랑을 얻고 딸에게 '알마'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 근거가 된 책이다. 그리고 독자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상상, 원고와 사본과 번역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의 역사는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다. 편지와 원고와 번역과 기록, 이와 같은 문자의 힘으로 인간 문명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 '사랑'의 호흡이 느껴지는 듯하다. "실제로 할 말이 많지 않다. 그는 위대한 작가였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라는 거스키 자신이 쓴 부고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맺힌다.
책 하나를 모티브로 60여년의 세월을 오가며 엮이는 인연의 사슬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서서히 아귀가 맞아가는 이야기가 흥미롭고도 애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피폐한 현실을 살아가며 머리가 사막처럼 메말랐다고 느껴질 때 읽으면 좋지 않을까...
문학의 힘이라는 것, 그게 새삼스럽게 얼마나 큰 것인지, 유태인 출신의 작가 혹은 유태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다. 니콜 크라우스가 유태인 가문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연성이 클 것 같다. 이 책에 그려진 주인공 레오 거스키가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이라, 그들의 언어와 역사와 감성이 이 책에서 절절히 배어나온다.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의 주인공도 유태인이고 (작가가 소련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집안 출신인데, 그도 유태인 집안일까?), 엘리 위젤의 <나이트>는 두말 할 필요도 없고... 재력도 중요하지만 유태인의 정신적 아우라는 아마 이런 작가들의 재능, 문학 작품 속에서 한껏 발휘되어 세계로 퍼져나가니, 부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모스크바의 서점에서 우리의 문학 작품을 발견하는 그날까지 우리도 정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