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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설몽

게리 슈타인가르트, 미국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Absurdistan의 작가. 고대하던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임에도 작가로서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여겨진다.

147킬로그램의 몸뚱어리를 가진 미샤 바인베르크는 흡사 가르강튀아를 비롯해 문학에서 등장하는 거구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주인공이다. 주전부리 대장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식욕과 부자 아버지를 등에 업고서 완전한 성인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유치한 정신 세계, 미국의 대중 문화에 심취한 채 심신의 안위와 여자친구와의 사랑만 생각하면 그만인 한량의 모습... 그러나 한심스러우면서도 진심 어린 그의 따뜻하고 순진한 캐릭터는 몹시도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다문화 학위를 받고 그 속에서 편히 살고픈, 어설픈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을 축으로, 이 책은 그 다문화 사회에 내제된 기이한 모순을 드러내고, 러시아연방의 해체 후 압수르디스탄이라는 중앙 아시아의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석유 이권을 놓고 벌이는 미국 정부와 미국 회사들의 보이지 않는 한판 정치를 풍자하고, 그 큰 외압 속에 희생되는 압수르디스탄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며,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현 자본주의의 행태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비판한다.

긴 장편이면서도, 풍자와 익살로 버무려진 캐릭터들과 그들의 인생관, 어설픈 아메리칸 드림과 소비주의의 비판, 가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글쓰기는 재밌고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물질문명의 수혜를 입었지만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다 큰 아이, 여린 감성과 방황하는 관념의 영원한 사춘기 소년, 미샤라는 주인공의 탄생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부모의 재력과 막강한 제어 속에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의 모습이 겹쳐지는 인물이다.

슈테인가르트의 차기작 뿐만 아니라 처녀작도 몹시 기대된다. "그 밖의 누가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힙합, 그리고 21세기 오일 정치와 전쟁을 함께 묶을 수 있을까"라고 쓴 어느 미국 서평의 글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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