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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vr7님의 서재
  • 어려운 여자들
  • 록산 게이
  • 13,500원 (10%750)
  • 2017-07-10
  • : 717
록산 게이의 단편집 <어려운 여자들>은 칼에 비유하자면 단검, 그것도 잘 갈아서 날이 벼른 사냥용 칼이다. 예전 조선시대 여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순결을 잃으면 은장도로 자결하는 게 권고되었다. 그런 면에서 은장도는 남을 찌르기 위한 칼이 아니라 자신을 찌르기 위한 칼이다. 더 나아가 강간범을 협박하기 위한 칼이다. ‘더 가까이 오면 이 칼로 내 목을 찔러서 자결하고 말겠어요’하고 상대방을 겁박하기 위한 칼이다.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 및 협박을 위한 칼이어서 그런지 칼날은 무딘 편이고 크기도 매우 작다. (개인적으로 은장도가 실제로 자결에 사용된 빈도는 매우 적을 것이라고 본다. 약혼자들과 남편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필수 장신구 정도가 아니었을까? 중세 유럽의 정조대처럼.) 반면 스나이프는 철저하게 남을 찌르기 위한 칼이다. 대상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확실하게 숨통을 끊고, 장기를 적출하고, 고기를 발라낼 수 있는 칼이다. <어려운 여자들>이 잘 벼른 단검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록산 게이는 우리가 마음속으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정면대결을 회피해왔던 불편한 지점들을 인정사정 없이 공격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여자들>은 독자들을 마구 찔러댄다. 그야말로 어려운 작가이고 어려운 책이다.
등장인물들은 어떠한가. 착해빠진 여자주인공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다. 소아성애자에게 납치당한 소녀들, 항상 수해를 몰고 다니는 불운한 여자 비앙카, 헤픈 여자, 불감증의 여자, 미친 여자,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한나, 유리 아내, 카톨릭 신부를 유혹하는 레베카……. 그녀들은 성폭행을 당했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중이거나, 남자를 유혹하거나, 남자에게 유혹을 당하는 중이거나, 아니면 불감증이거나, 색정증 환자같지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은 그녀들 중 아무도 남자에게 순종적이거나 헌신적이지 않다. 그렇게 살아봤다가 골로 가보았던 경험 때문에.
이 소설집은 읽는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불편함이 꼭 필요한 불편함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소화불량을 해소하려면 쓰디쓴 소화제를 마셔야 하듯이. 이 책은 내가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아오는 동안에 마주쳤던 무수한 성폭력적인 언어들, 행동들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만들었다. 그동안 부조리한 상황들이 닥칠 때마다 애써 괜찮은 척, 담담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타협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된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당신, 참 어려운 여자야.”란 말을 칭찬처럼 받아넘길 수도 있어야 한다. ‘너는 참 나쁜 페미니스트’란 평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긴 생각해보자. 20세기 초엽에 여자들에게 투표권이 있기나 했던가? 그때 “여자도 투표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던 젊은 여성들에게 주변인들이 어떻게 대했던가? 멸시와 조롱뿐이었다. 그때 그녀들이 저항운동을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에게 투표권이 있었을까? 지금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불러오고, 행동의 변화는 사회를 변하게 한다. 법을 바꾸게 하고, 삶을 바꾼다.
여성의 해방은, 곧 남성의 해방이라고 믿는다. 내 주변의 여자사람들 뿐만 아니라 내 남편에게도 그리고 남자사람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어떤 불편함은 약이다. 잠깐의 불편함으로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진다면, 감당하고 볼 일이다.

PS. 자매품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도 일독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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