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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익님의 서재
  •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양승훈
  • 17,820원 (10%990)
  • 2024-03-28
  • : 6,155
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울산이 고향이라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뻔하다. 그리고 울산 출신들의 대답도 대체로 뻔하다. “노잼도시”라는 자조와 “그래도 우리 GDP가 1등(1인당 GRDP)”이라는 자부심. 많은 청년들에게 ’울산은 노잼이지만 그래도 부자인 산업도시‘ 정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과연 청년들이 떠나는 노잼도시는 산업도시는 미래에도 굳건할 것인가.” , “우리는 2030년, 2050년에도 지역 GDP 1등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인가”.

신간 <울산 디스토피아>의 답변은 단호하다. 울산의 미래는 어둡다. 저자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사회학자이다.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는 도시사, 경제지리, 노동•산업사회학, 면접조사 등의 틀을 통해 산업도시 울산을 정밀하게 조망한다. 구성은 구조적이고 내용은 디테일하다. 문제 진단을 넘어 개선 방향에 대한 제언도 빼놓지 않았다.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에 빨간 불이 켜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기업의 구상 기능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엔지니어와 노동자가 현장에서 밀착하며 노동이 혁신을 이끌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고학력 엔지니어의 비중이 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이런 이유로 기업의 구상 기능은 수도권으로 떠났고, 울산은 생산기지 이하로 전락하고 있다.
둘째, 적대적 노사관계가 빚어낸 생산방식과 노동 이중구조의 문제다. 노조를 불신한 기업은 노동자의 숙련을 중시하자 않는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정규직 중심의 노조는 울타리 바깥의 노동자와 연대하거나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데 무관심하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하청 노동이 확대되고, N차밴더 구조가 만들어졌다. 울산에선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생산적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셋째, ‘산업가부장제’로 정의되는 고용시장 문제다. 남초 산업도시인 울산에서 여성의 커리어는 매우 취약하다. 통계만 보아도 남녀 임금격차가 극심하며, 청년 대졸자가 갈 만한 사무직 일자리도 부족하다. 이런 세 가지 요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울산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큰‘ 위기감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모두가 ‘울산은 청년들이 떠날 만한 곳이고 언젠가 디트로이트처럼 될 것’이라 얘기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 일뿐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울산의 3대 주력 사업(자동차-조선업-석유화학)은 견고하며, 수출 제조업 대한민국은 그런대로 잘 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 ”울산은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서서히 질식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제대로 된 대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은 부울경 메가시티나 전략적 산업정책 같은 구상에 힘을 못 쓰고, 그린벨트 풀어 산업단지 더 유치하겠다는 정도의 현상유지적 해법에 그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와 정책 생태계 전체가 위기를 돌파할 만한 해법을 찾는 데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문제는 ‘저성장 - 제조업 위기- 지방소멸 - 노동 이중구조 - 초저출산’ 등으로 얽혀있는 대한민국의 구조적 위기와 맞닿아 있다.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는 울산 문제가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화 이래 대한민국이 걸어온 제도적 경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1등 산업도시인 울산조차 무너진다는 것은 지방/비수도권 권역의 몰락을 상징한다. ‘성실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노동계급 중산층의 약속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울산의 위기는 전환기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이다.

‘울산 디스토피아‘는 ’코리아 디스토피아‘의 첫 번째 에피소드다. 지금의 한국정치와 초저출산 그리고 K문화의 영광은 ‘디스토피아 시리즈의 프리퀄’ 격이다. 성장 동력은 떨어지고 양극화는 극심해지며 그 과정과 결과는 각자도생과 포퓰리즘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나라의 미래는 어디로 흐를 것인가?

‘그래서 어쩔 거냐’는 푸념을 넘어, 구조개혁과 사회적 합의를 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울산 지역사회를 넘어, 여기저기서 많이 읽히길 소망한다. ( 저자는 부울경 메가시티, 3대 제조업의 미래에 관한 얘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 <울산 디스토피아>가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한 풍성한 논쟁을 만들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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