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 작가의 신간이라 표지만 봐도 설렜다. 눈이 부신 듯 손차양을 한 소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이 호기심을 더했다. 주인공은 고3 여학생 시안. 6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엄마를 돌본다. 병원에서 시안은 어린 간병인, 지극한 효녀로 불리지만 사람들은 시안의 마음을 모른다.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막다른 마음을 오가는지. 간병, 돌봄, 죽음, 존엄사. 최근 내게도 너무나 절절했던 일들. 나는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떠나기까지) 겨우 두 달이었는데 6년째 간병이라니. 아기가 된 엄마를 돌보는, 엄마의 엄마가 된 십 대라니. 시안 곁에는 두 사람, 간병인으로서 멘토 역할을 해주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무너진 일상을 함께 지탱해가는 아빠가 있다. 선생님을 의지하고, 때론 아빠에게 서운해하면서 시안은 묵묵히 돌봄 노동을 수행한다.
참고 견디고 어루만지고, 원망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길을 가는 시안. 그 끝을 알기에 지금 당장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엄마의 삶인지, 시안의 미래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다 6년 전 헤어진 친구, 엄마를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이들을 만난다. 시안과 해원. 둘의 엄마는 자매 같은 이웃이었다. 해원의 엄마는 시안에게 엄마 못지않게 살가운 이모였는데 그 일 이후로, 두 가족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을, 용서하기 어려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시안이 되는 것도, 시안의 엄마가 되는 것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시안은 엄마의 손발이 되어, 엄마를 씻기고 먹이며 중, 고등학교 6년을 보냈다. 삶보다 죽음을 가까이 보며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시안, 엄마에게 정성과 진심을 다했지만 희망이 없음을 안다. 이제는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고 엄마가 아닌, 나를 살려내야 할 때. 내가 시안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내가 아빠라면 아내를 위해, 아니 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다. 첫째는 존엄사와 돌봄에 대해서. 인간은 모두가 늙고 병든다. 자신의 일상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날이 오고, 결국은 누군가의 구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처음엔 아이들이 이 소설을 과연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죽음과 돌봄은 주로 중년 이후, 7, 80대 부모를 둔 이들의 문제니까. 하지만 노화만이 아니라 질병과 사고로도 인간은 쓰러진다. 10대 후반, 20대에도 부모를 돌보는 이들, 비록 소수지만 우리 사회에도 영케어러가 존재한다. (조기현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고 나도 영케어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시안의 결심, 아빠의 선택, 해원의 행동은 ‘나라면, 나였다면...’ 묻게 한다.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 살아야 한다면, 누가 더 중요한가? 이 선택은 누가 결정할 것인가?
두 번째는 용서와 화해. 관계와 책임의 문제. 시안은 엄마의 상태를 받아들인다. (엄마가 혜원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만) 과거는 돌릴 수 없는 법, 친구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6년이란 세월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혹독한 일상은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가벼워질 수 없음을. 소설에서는 해원 엄마의 행동과 혜원의 행동이 대비를 이룬다. 한 가족이지만 어른과 아이, 과거와 현재의 행동에 차이가 있다. 시안 가족에게 책임을 덜기 위해 했던 혜원 엄마의 행동은 어른답다.(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은 주로 무엇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 해결은 하나로 귀결된다.) 해원은 시안과 헤어진 이후, 시안의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걸 몰랐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건의 전모를 말하지 않으니까. 혜원은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진심을 전하고자 애쓴다. 백온유 소설은 아이들 편에 선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할 만큼 했다며 안심하는 어른들의 안일함을 덮어주지 않는다. 시안과 해원은 친구였고, 다시 만나도 친구가 맞았다. 하지만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좋은 날만 있는 게 아니라면, 어쩌다 '서로의 영혼을 해칠' 날이 올 수도 있다면, 차라리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어떤 헤어짐은 그늘을 벗어나 햇살로 나아가게 한다. 해원과 헤어지고, 엄마와 떨어져도 시안은 선택은 지금 여기의 최선이다.
삶에는 운명처럼 그늘이 있다. 소설 <페퍼민트>는 작가의 전작 <유원>처럼 그늘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을 보여주지만, 그늘을 탓하지 않고 그늘에서 벗어나는 희망을 말한다. 그늘에 있는 시간이 외롭고 아파도, 잘 머물고 견디다 보면 만남이 있다. 나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잊혔던 이들까지. 만나야 할 사람을 잘 만나고 나면 헤어짐도 두렵지 않다. 시안은 이제 그늘을 벗어날 때가 됐다. 충분히 잘 머물렀기에 빛을 향해 걸음을 뗀다. 해원도 시안을 잊고, 시안처럼 살지 못한 그늘의 시간이 있었기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전염병의 파문으로 불신과 불안이 만연한 시대, 페퍼민트 차를 두고 마주 앉은 시안과 혜원처럼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불안을 다독이며 나아가야 한다. 만남이 아닌 멀어짐으로, 함께는 아니어도 혼자서도 담담하고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