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인간 삶의 생물학적 끝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삶을 사색케 하여 죽음의 은적을 삶의 현시의 이면으로 보는 눈을 열어주시기 위함이다. 죽음은 인생이 소유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소유론적 혁명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이념을 갖고 있어도, 세상을 개조하여 장악하겠다는 생산론이나 창조론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거기다가 도덕론적 탐욕은 정의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명분화하므로, 뜻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화내는 진심(嗔心)이 더 추가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이기적 인간의 마음을 교정시킬 수 없으니까 자연히 그 권력은 강제로 인간의 마음을 수리하겠다는 탐욕을 갖고서 억지로 모든 것을 뒤튼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원시 공산사회나 요순사회가 재귀하지 않는다. 유식학적으로 무의식의 이기적 심상(心象)이 이미 의식의 표상(表象)을 지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의식의 표상이 명분적 도덕 명령과 권력의지로 무의식의 오랜 습기인 심상을 지울 수 있겠는가?
모든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아상의 주관적 신념대로 바꾸겠다는 환상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헛된 구호요 공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주관적 아상의 고집으로 바뀌거나 변경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원력과 희망은 소유론적인 속성이 아니고 존재론적 특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난날의 대결도 결국 지배 주체의 선의지적 소유의 정당성을 세상에 펼치려는 이데올로기의 산물과 다르지 않다.
이제 인류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소유론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여의고, 마음을 소유론적 탐욕에서 존재론적 원력과 희망으로 돌리는 길만이 인류를 고통의 번뇌에서 해방시키는 지혜다. 또한 마음을 무의식의 본능에서 문의식의 본성으로 자리 이동하는 것이 대승사상이다. … 대승사상도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는 여래장의 종자를 살려 그것으로 세상의 번뇌를 복락으로 돌리려 하는 희망의 철학이다.
정의의 선의지를 가진 집단이 세상을 지배하면 세상은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은 세상으로 능위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낙관적 계산이 인류의 형이상학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그런 낙관적 계산은 모두 허구로 판명됐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소유론이 사회주의적 소유론보다 더 유효하고 덜 해롭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전자는 후자보다 인간 무의식의 본능적 이기심에 더 적합한 자발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경제에 입각한 경제기술적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류에게 계속 지속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잇다. 사회주의는 그 고상한 도덕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모든 경제적 이익을 붕괴시킴으로써 사회주의가 득세한 곳의 경제는 다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