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의 법칙을 따라 남주가 매우 큰 업보를 스스로 쌓으면서 관계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천재 여주가 진심으로 남주를 혐오하면서 막 대하는 모습으로 찜찜함이 다소 해소되어요. (휘둘리는 감도 없진 않지만~ 남주가 적극적으로 유혹하기도 하고요.) 아예 기대치가 없는 상태로 시작된 관계여서인지 작품이 흘러갈수록 여주가 남주를 재발견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어요.
투란도트 이야기가 비유적으로 등장하는데, 권력(재력)을 가진 쪽이 남주이다보니 이 작품과 일대일대응하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남주가 왕자이자 류이자 투란도트의 아버지 역할이고 여주가 투란도트로 시작해서 왕자와 류의 면모를 조금씩 갖게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반도체 사업의 혁신이 남주가 여주에게 접근하는 표면적인 이유인데, 어렵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다뤄져서 좋았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무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대로 흘러가는 듯한 부분인데…. 처음 읽을 때에는 여주가 무연정자이면서 성애가 아닌 방식으로 남주에게 특별한 친애를 느꼈으면 했어서 좀 실망했었어요.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건데, 어쩌면 여주는 사실 에이스펙트럼에 여전히 위치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자의적인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