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글의 맛을 늦게 안 나로서는 사실 일큐팔사와 몇 개의 다른 장편소설들을 접한 후, 그 방대한 글들의 양에 행복하기도, 막막하기도 했었다.
봄느낌에 맞추어 상큼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중국행 슬로보트>. 이걸로 말하자면 하루키의 첫 소설집이자 직접 손댄 몇 안되는 개정판이란다.
사실 나는 하루키의 조금 무거운 장편들보다는 이런 상큼상큼한 단편들이 취향이다. <빵가게 재습격>이나 <반딧불이>같은 단편들은 통통 튀는 그의 생각지도를 따라가는 맛이 있는데, 그 단편들의 시발점이 바로 이, <중국행 슬로보트>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이 든다.
작가의 말에 보면, 하루키는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내용을 쓴다고 한다.
제목인 중국행 슬로보트 라든가, 가난한 이모 같은 소설들은 뭐랄까 운율이 딱딱 맞는 제목들과 함께 내용도 잠깐씩 즐겁게 읽기 좋았다.
하루키의 단편들은 에세이와 장편소설의 중간 느낌. 내 나름대로 내려본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