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있다는 고양이빌딩을 처음 사진으로 봤을 때 나는 ‘책등’이 생각났다. 99% 다크초콜릿바처럼 검정색에 길쭉하고 얇은 건물이 우뚝 서 있는 모습에서, 마치 나는 청계광장에 있는 네모네모한 빌딩들 사이에 양장책처럼 우뚝 서 있는 ‘동아일보사’를 처음 본 날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건물이 팔랑팔랑 펼쳐질 것 같다고 말이다.
책등처럼 생긴 부분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이 빌딩은 일본의 대표 지성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개인 서재라고 한다. 길쭉하게 높이 솟은 빌딩 전체의 활용도를 개인서재로 쓴다니...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할 작은 서점사장의 꿈을 꾸고 있는 나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 이 빌딩의 존재는 응당 독서가라면 호기심을 자극할만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고양이빌딩 사진을 올려놓는 글들을 드문드문 볼 수가 있다. 내부에 들어가진 못해도 외향적인 건물로도 충분히 호기심이 발휘되나보다.
근데 이 책 참 독특한 전개다. 보통 서재가 있는 건물을 이야기 한다면 건물사진과 주소부터 나와야 하는데, 이 책은 책무더기들의 사진들이 즐비하다. 책을 펼쳐보면 각 층수의 책들과 조감도가 가장 먼저 보인다. 배수관도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데, 건물 외관과 주소를 전시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주체의 관점이 다른 것이리라. 우리나라 같으면 주소와 건물 사진이 표지로 쓰여 준관광명소가 되었을 텐데, 이 책의 주체는 서재의 용도라는 것을 명확하게 내걸었다.
서재의 전체사진이 아닌, 서재의 군데군데 여러 사진을 합쳐놓은 방식도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집합체처럼 보이겠지만, 주인에게는 그때그때의 생각에 이끌려서 서적을 모았으리라. 그 집합체를 책으로 읽고 상상을 해보니, 이 정도면 작가가 보통 변태가 아니었다. (내 나름대로의 칭찬이다)
1. 태그처럼 따라오는 기억의 파편들의 정리
책을 고르거나 읽은 책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는 독서가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 있다면, 딱 그 책의 줄거리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기억하는 방식이 각자가 다르겠지만,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집필했는가, 이 책에서 차용한 내용들, 시리즈로 지어지는 책들 등 책과 연관된 이야기들은 정말 방대할 정도이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밝히자면,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삶, 때로는 동료들의 추천사와 비난까지도 중요시하게 여긴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굉장히 흥미로운 뒷이야기인 것이다.그리고 나는 그 것을 나만의 언어로 ‘태그기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서재의 한 뭉텅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 서재를 구성하고 있는 책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래, 마치 태그처럼 말이다. SNS의 태그처럼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억들이 글로 여과 없이 줄줄 나오는 데 책을 읽다가 한참동안 교통정리를 못해 멍해지기도 했다. 근데 이게 진짜 묘미지...

2. 일본의 대표 지성작가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정리정돈
도쿄에 있는 ‘고양이빌딩’ 외관 사진은 몇 번 봤어도, 서재의 구성은 이 책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 도서관마냥 도서목록과 컴퓨터바코드가 있을까? 대략 이십만 권이라는 책은 어떻게 보관되어 있을까? 사적인 내용들은 기록들은 또 어떻고... 그런 궁금증이 샘솟기 시작하였으나, 막상 서재를 사진으로 보고 나니 피식하고 웃음부터 나왔다.
책이 좀, 아니 아주 많은 것 말고는 우리 집 책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정리정돈이었다. 책을 눕혀서 이중삼중으로 꽂고, 리포트들은 책상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며, 모아놓은 잡지들은 엉망이었다. 다행인 것은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이 꽂은 책들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책은 저자의 기억보존을 위한 서재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자랑이고. 이 부분에서 나는 배가 좀 아파지려한다.
3. 이거 하나는 부럽다?
‘이거 하나는 좀 부럽다’가 아니라, 사실 좀 많이 부럽다. 초판본 수집가, 책 수집가, 애서가는 아니지만, 독서를 취미로 하는 나로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아니 이 사람은 무슨 책을 이렇게 많이 모았어? 책을 잘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처럼. 그는 고교시절에 산 책 까지도 모아두는 사람이었다.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후에 박물관이라도 만들어서 내부를 보존해서 후에라도 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요즘 시대에 휴대전화의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이 있을까? 산골짜기에도 휴대폰이 팡팡 터지는 시대 아니던가.
근데 다치바나의 공간에는 있다. 책상과 침상이 있는 산초메 서재의 집필공간에는 휴대전화 전파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까지는 어떻게든 연결이 되지만, 조금이라도 안에 들어오면 통화대역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물론 거기에도 산더미 같은 자료의 산을 이루는 엉망인 정리정돈이겠지만, 책을 읽고 쓰기 위해 틀어박혀있기엔 최적의 장소가 아니겠는가.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4. 역사의 흔적, 잡다하고 넓은 지식의 조합체.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테러는 당시나 지금에도 충격적이고 비인간적인 테러였다. 아사하라 쇼코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신흥종교는 그 사건으로 몰락하였으나, 당시 옴진리교의 무서움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옴진리교는 ‘옴출판’이라는 출판사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책을 출간하였다고 한다. 테러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괴이한 소문이 나서 차츰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정부의 단속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나올 때 쯤 다치바나는 옴진리교에 대해 쓰거나 코멘트 할 것들이 필요했고, 그 서적들을 입수해두어 지금에 와서는 대단히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다치바나의 서재에는 역사의 흔적이 있다. 또 그의 책들은 우주론, 그리스도론, 공판자료 등 분류에 제약이 없는 지대한 조합체를 보여준다. 흔히 책은 목적이 있어 산다고들 하는데, 그의 서재는 목적보다는 지식의 ‘앎’의 결정판으로 보여 진다. 참 여러 방면으로 잡다하게 깊고 넓은 세계였다.
5. 이 책, 이거는 좀 아쉽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선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번역, 편집하면서 느낀 옮긴이의 글이라던가, 편집자의 글을 기대했었다. 아무래도 주제가 책인 만큼, 이 책을 국내에서 선보인 문학동네 편집인이 본 다치바나의 서재가 궁금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