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소소하게 읽어요.
  •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
  • 알레프
  • 15,300원 (10%850)
  • 2026-05-20
  • : 1,195
#도서제공 #얼마나발칙해도될까 #알레프 #브로북스 #페이퍼사운드숨쉼음

청소년기에는 학교 백일장 당선작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글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잘 쓰기 위해 애쓴 문장보다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를 읽으며 문득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음을, 읽히는 문장으로 페이지에 문장의 주파수를 맞추다’라는 시리즈의 모토를 보았을 때는 뮤지션 특유의 감성과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책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내게 건넨 것은 화려한 수사나 특별한 재능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꾸밈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솔직한 문장들이었다.

사실 나는 이 작가의 음악을 모른다. 성별조차 알지 못했고,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내게 책을 펼치기 전까지 그는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것은 뮤지션이라는 직함 때문이 아니라 글 자체가 가진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난 그는 천재 뮤지션도, 성공한 예술가도 아니었다. 현실적인 피로감과 타협, 대중성과 자신의 취향 사이에서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 직업군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분야에서 살아가든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을 담고 있다. 이상을 쫒으면서도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공존해야 하는 일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생각보다 비슷한 고민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전반적으로 책은 담담한 산문집의 결을 가진다. 때로는 약간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문장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향한 체념이라기보다 삶을 오래 통과해 온 사람이 갖게 되는 거리감에 가깝다. 끝까지 읽고 나면 그 아래에 자리한 뮤지션으로서의 철학이 조금씩 드러난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경계하며,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조용히 스며 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철학을 논하는 책은 아니지만, 어쩌면 어떤 철학서보다 인간의 중심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고. 철학의 계보를 설명하거나 사상을 정리하지는 않지만, 한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철학적으로 읽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현재의 나와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문장을 읽다가 몇 번이나 멈춰 섰다. 내가 최근 품고 있던 생각과 질문들이 낯선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인간은 어느 시기에 이르면 비슷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도 내가 이 작가와 닮은 사람인 것일까. 어쩌면 생애주기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보편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책이 내게 남긴 것은 공감보다도 질문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깨달음 앞에 서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도 이 작가와 내가 닮아 있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낯선 사람의 문장 속에서 현재의 나를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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