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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의 한적한 하루
  • 21세기 지정학
  • 아미타브 아차리아
  • 31,500원 (10%1,750)
  • 2026-01-07
  • : 3,810

  원제는 '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이다. '세계질서의 어제와 오늘'로 번역할 수 있다. 화이트의 소설 'The Once and Furure King'에서 패러디한 제목이다. 인도계 미국인이자 캐나다인인 아마티브 아차리아는 5000년 세계 역사를 서구중심 역사관에서 탈피해서 세계질서의 변화를 조망하였다. '21세기 지정학'이라는 의역이 나에게는 왠지 어색했다.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이란 지리적 위치, 영토, 자원 등의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마치 21세기 지정학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서 미국의 쇠퇴와 세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설명해줄 것 같은 의역에 기대를 갖고 이책을 읽는다면 실망감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는 지리적 위치나 영토, 자원 등의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도 깊은 분석을 해주지도 않는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성립되겠지만, 이러한 대전환은 과거에도 있었왔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는 원제의 탁월한 함축적 의미를 '21세기 지정학'이라는 제목은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지정학 책이라기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탐구해보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서구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그동안 무시되거나 무관심했던 나머지 문명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기존의 서구중심 역사관은 지금의 세계질서는 유럽을 중심으로한 서구문명이 낳고 길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서구와 앞서거나 혹은 서구와 비슷한 시기에 그러한 질서와 문화를 만들었다고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영화 300에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는 어둡고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야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서구인들은 페르시아를 그렇게 보고 있다. 키루스 대왕의 자비와 관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최초의 인권선언이라 불리는 키루스 실린더의 복제본이 뉴욕 국제연합 본부에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떠올려야한다. 반면 그리스는 평화를 사랑하고 용감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아테네가 멜로스에서 저지른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계는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서구와 전 세계는 또한 페르시아의 유산인 종교적, 민족적 관용, 타문화 수용능력, 광대한 영토 관리 능력을 배울 수 있다."-86쪽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인도화(Indianization)과 헬레니즘화를 비교한다. 헬레니즘이 전쟁에 의해서 시작된 반면에 인도 사상이 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확산에 강압이나 정복은 없었다. 현지 사회의, 현지 사회에 의한, 현지 사회를 위한 인도화가 이루어졌다. 그 영향력도 헬레니즘보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현지 통치자들의 정치적 권위를 확장하도록 힘을 실어주어 큰국가, 제국 건설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세계사를 배우며 한번도 인도화와 헬레니즘화를 비교한적이 없었다. 기존 역사적 서사를 당연시하며 받아들였다.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역사적 서사사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서구중심의 서사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우리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서구중심의 서사는 비서구문명의 업적과 가치에 무관심과 무시로 이어진다. 

  서구의 국제관계는 평등을 기반으로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국제질서이다. 물론, 저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베스트팔렌조약의 한계점을 지적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베스트팔렌조약 이전 서구의 국제관계는 국가간 주권을 인정하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국제질서를 확대해석하여 중국의 조공책봉체제를 굴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서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강압보다 의례에 더 많이 의존했던 중국의 조공체제는 식민지화 없이도 다른 국가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외교적 혜택을 부여했다. 이 체제가 거의 2천년 동안 지속되고 중국의 이웃 국가들에게 지지받았다는 사실은 그 효과와 정당성을 증명한다."-142쪽


  한국 사람들은 조공 책봉 체제를 치욕스런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비해서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세계 역사를 조망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서구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에나 주권을 존중하는 평등한 국제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가를 평등한 주권국가로 대우한 것도 아니다. 서구의 약탈적 식민지화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조공책봉체제이다. 오히려, 지금의 무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중국의 조공책봉 체제보다 더 나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평등한 주권국가와의 합의를 무시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괄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를 무기삼아 각국에게 많은 투자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라는 주권국가를 침략하여 마두르 대통령을 납치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가 평등한 주권국가로 대우받고 교류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상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문제는 그 이상에 현실을 얼마나 가까워지게 만드는가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무시되고 무지한 대륙은 아프리카이다. 저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아프리카 역사 중에서 '만뎅헌장'에 주목한다. 만리제국을 세운 순디아타가 쿠루탄 푸가에서 귀족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그는 1235년 '만뎅헌장'을 선포한다. '만뎅헌장'에는 "다양성 속의 사회평화, 인간의 불가침성, 교육, 조국의 통합, 식량안보, 약탈을 통한 노예제도 폐지, 표현 및 무역의 자유"(266쪽)가 천명되어 있다. 그뿐만아니다. 여성이 모든 통치에 참여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1215년 만들어진 마그나 카르타와 비슷한 시기에, 마그나 카르타보다도 더 앞선 진보적인 인권이 천명되어있는 것이 '만뎅헌장'이다. 우리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는 알아도 '만뎅헌장'은 모른다. 서구 중심의 역사교육의 한계의 슬픈 결과이다. 

  물론, 공자가 위대한 사상가로 인정받는 것은 그의 탁월한 제자덕분이듯이, 서구문명이 세계사의 주류가 된 것은 최근 500여전 동안 서구가 비서구를 폭력적으로 지배통치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찬란한 역사가 있었다한들 이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었다.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구문명이 쇠퇴하는 지금, 세계 무형유산에 선정된 '만뎅헌장' 헌장을 이제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가르쳐야하지 않을까? 그것은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우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역사관의 시작일 것이다. 

  서구중심 역사관의 가장큰 폐해는 서구중심 세계질서를 합리화하고 그 질서가 흔들리면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과연 서구중심의 국제질서가 비서구에게 축복이었을까?


 "나머지 세게의 관점에서 볼때 미국과 서구의 지배는 축복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안녕과 독립뿐 아니라 자존심까지 미치는 위협이었다."-13쪽

  "여러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인종차별주의, 노예제도,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의 식민지화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다."-253쪽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미국과 서구의 지배를 위협으로 보고 있다. 사실 그러했다. 서구문명의 확장 역사는 비서구 문명의 파괴와 약탈의 역사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그땅의 주인들이 총과 균에 의해서 학살당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그 이익으로 서구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듯이, 미국도 노예제와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의 식민지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서구가 되고 싶었던 일본은 이웃국가인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고 아시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근대화는 대한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피눈물 위에 가능했다. 서구와 서구가 되고 싶었던 일본의 발전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과 같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희생이라는 진흙탕을 자양분으로 아름다운 서구중심의 근대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연꽃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구와 일본은 그러하지 않았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기존 서구중심의 질서에 적응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질서에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힌트는 팍스 로마에서 찾을 수 있다. 


  "팍스 로마나의 개념은 어느정도는 로마인들의 자화자찬적 서서의 산물이다."-154쪽

  "제국 통치하에서 로마는 안정적 평화를 위해서는 지배적 세력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근대적 사상을 낳았다."-168쪽


  팍스 로마시기에 세계에 분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서구 문명은 팍스 로마 시기를 로마에 의한 대평화시기로 기억한다. 이러한 서구중심의 역사관은 헤게모니 안정이론을 탄생시킨다. 로마에서 19세기 후반 영국으로,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으로 초강대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어야 세계는 안정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로마의 유산이라고할 수 있는 헤게모니안정론! 과연 세계의 지배세력이 하나만 존재해야할까? 투키디데스트랩과 함께 미국의 패권을 합리화하고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론은 아닌가? 세계 패권국가가 꼭 미국일 필요가 있는가? 지역 패권국가 여럿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서로를 인정하는 국제 질서는 불가능한가? 물밀려 오듯이 여러가지 질문이 샘솟는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에 적응하고 서구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는 미국과 서구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지 않은 지금이 불안의 시기일 수 있다. 그러나, 달리본다면 변화속에 기회가 있다.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를 비서구국가들이 새롭게 만들수도있다. 그 작업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주도하여 보다 인간적인 질서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그리고 있는 앞으로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글로벌 멀티 플랙스이다. 다극(multripolar)이 아니라 멀티플랙스(multiplex)화이다. 기업, 재단, 비정부기구,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훨씬더 많은 행위자들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리되며, 사상과 문화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강대국 수가 증가하고,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과 협력이 나타나는 멸티플랙스화가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불안감 속에서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에서 벗어나서 보다 다차원적인 세계질서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밝은 미래상에 나는 동의하지는 못한다. 새로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국지전이 일상화되는 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극우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에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모습과 현재에서 유사성을 찾는 사람도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문제는 비관적 예상을 깨고 어떻게 하면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예상하는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느냐이다.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그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않늗다. 다만 이븐 할둔의 말을 남기며 이책의 끝을 맺는다. 


  "마치 온 창조물이 변하고 온 세상이 바뀐 것 같으며, 마치 새로운 창조가 반복되어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게된 것 같다."-435쪽


  우주적 관점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인도문명의 유산을 품고있는 인도계 미국인이자 캐나다인 다운 끝맺음이다. 파괴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제국주의, 문화적 오만, 인종적 배제가 깔린 서구문명의 몰락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국제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남겨준 우리의 과제가 되었다. 




ps. 옥의 티

  71쪽에 "조로아스터교는 아케메네스 왕조 아래에서 부활하여 국교가 되었는데, 창시자의 시대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가 국교화한 것은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장려했지만, 국교로 삼지는 않았다. 특히, 키루스왕은 유대인들에게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고향으로 갈 수 있게 했으며, 그들의 성전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세계 역사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 모습을 보인저자의 실수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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