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읽으며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칸트는 확정조항으로 제시한 3가지 중에하나가 모든 국가는 공화정체여야한다고 주장했다. 공화제 즉, 민주 공화제를 각국에 도입하는 것은 영구평화를 위한 초석을 놓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유주의자 학자들이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지지했다. 그들의 강의를 들으며 나도 이에 동조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평화수업에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미국 네오콘의 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이 그 단초를 제시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가 세상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이 바로 그러한 정책이다. 칸트가 모든 국가가 공화정체여야한다고 주장했듯이,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은 지구상의 독재국가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교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적 패권국가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을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거대한 환상(The Great Eelusion)'이라고 말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자유주의의 보편적 소성이 자유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것 만큼 강력하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그 같은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202쪽
자유주의자들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보편적 진리일 수 없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속에서 서구의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명분아래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지 않았다.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마스크 착용의 효과가 나타나자 그제서야 마스크 착용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강경화 장관이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말했듯이, 서구 자유주의자들이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그들 사이에서만의 진리였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에게 두가지 충고를 한다. 첫째,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에 대한 야망을 버려라. 둘재, 미국은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와 현실주의에 근거한 절제된 외교정책을 채택하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에 가득찬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독재국가를 타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확산하기 위해서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을 추진하였다. 1953년 이란에서, 1954년 과테말라에서, 1973년 칠레에서, 2006년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를 불인정하고, 2013년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을 추출하려는데 관여하였다. 그렇다면 세계는 자유민주주의가 확산되고 더 평화로워졌을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자유주의적 패권주의 모굪가 세상을 더욱 평화로운 곳으로 만드는데 있다고할지라도 그 나라의 외교정책은 국제체제의 불안정을 야기하게 된다." -273쪽
"강대국들이 현실주의에 배치되는 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는 경우 그들은 항상 후회하게 될 것이다." -29쪽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군사활동을 하면 할 수록 세계는 더 불안정해진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 미국은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많은 젊은이의 피를 댓가로 지불했다. 굴욕적인 베트남 전쟁의 패배는 현실주의에 배치되는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이 미국에 어떠한 불행을 안겨주는지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미국은 소련의 붕괴와 걸프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어리석은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세계는 더욱 혼란해졌고,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는 커져만 갔다.
미국은 '자유주의는 민족주의와 충돌할 경우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155쪽)는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충고를 명심해야한다. 베트남의 호치민은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베트남 독립직전 미군 공군 조종사를 구출해서 미군에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국 독립을 위해서 공산주의와 손을 잡은 호치민을 미국은 신뢰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은 미국 외교의 불행을 가져왔다. 베트남의 민족주의자들은 호치민을 중심으로 미국과 끈질긴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은 승리하고 미국은 패배했다. 내가 믿고 있는 올바른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라는 노론의 주장에 '정학을 열심히 익히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모범을 보인다면 세계의 시민들은 미국을 동경하며 스스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국의 독재자와 싸울 것이다. 절제된 외교는 바로 이것이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국제외교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자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주장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자유주의자의 주장도 제1차 세계 대전시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사이의 전쟁은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라 반박한다. 이밖에도 보어전쟁, 미서전쟁, 카길전쟁(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도 민주주의 국가 사이의 전쟁이라 반박한다. 내가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는 길이라 믿었던 근거를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근본부터 무너 뜨렸다. 그뿐만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를 몰아내는 시민혁명은 서방측 특히 미국의 CIA의 부추김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키예프 새정부에 신파시스트라고 불러도 될 수 있는 인물이 4명이 포함되어있었다는 주장도 한다. 서구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 불리한 사실도 과감하게 제시하는 미국 시카고대학 석좌교수 존 미어샤이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