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이 유교의 경정이되었다. 주역점을 치는 책이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고한 공자가 가죽끈이 세번 떨어질 정도로 애독하던 책이라니 아이러니했다. 단순히 점치는 책이라면 공자가 이렇게 좋아할리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주역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역이 어려운 책이라는 공포(?)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십에 읽는 주역'을 먼저 읽기로 했다.
저자 강기진은 어려운 주역을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한자 하나 하나를 갑골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 뜻을 깊이 있게 설명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튜버들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쉽게 주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중에서 박막례 할머니의 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는 거이여.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치고 장구 치고 니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164쪽)
불교에서 강조하는 주인으로 살라는 말을 박막례 할머니는 70 평생의 긴 내공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주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명예와 승진을 부추겨도 이에 휩쓸리지 않는 거목이 되고 싶었다. 박막례 할머니의 말씀은 거목이 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 주었다.
강기진은 '붕'과 '우'의 차이를 갑골문을 들어 설명한다. 우는 서로 손을 잡은 상태를 뜻한다. 소꿉친구들이 이에 속하는 반면, '붕'은 같다는 뜻으로 동류라는 뜻이다. 같은 도를 추구하며 가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을 붕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우를 사귀려했다. 그것이 진정 사심없는 사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삶의 의미를 생각해야하는 우리는 붕을 사귀어야하지 않을까? 같은 뜻을 같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붕을 사귀어야한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려 고민하는 붕을 사귈 때이다.
책을 덮었다. 두꺼운 주역을 얇은 책으로 이해하려했다. 물론, 이 책한권 읽었다고 주역의 심오한 뜻을 다 이해했다고 믿지 않는다. 공자가 인생의 여로에 주역을 읽으며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려하였듯이, 나도 언젠가는 주역을 읽으며 인생을 이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