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민들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경축하고 있을 때, 서울 중구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는 한무리의 노인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든 현수막에는 "대한민국 역사 왜곡 작가 노벨상, 대한민국 적화 부역 스웨덴 한림원 규탄한다"라고 씌여있었다. 친일 반공에 뿌리를 둔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4.3과 5.18을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 폄하한다. 그 사진을 보며 저 늙은 보수꾼들은 한강작가의 책에 담긴 어떠한 내용이 무서워 저리도 몸부림치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큰딸이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에게 책을 넘겨 주었다. 200여 쪽의 얇은 책을 펼쳤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낯선 것은 2인칭 시점의 서술이었다. 도청에서 군인들의 총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을 관리하는 주인공 동허를 '너'라고 작가는 불렀다. 낯설었다. 중학교에서 1인칭 시점과 인칭 시점의 소설에 대해서 배웠지만, 2인칭 시점에 관해서는 배운 기억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인칭 시점은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고 한다. 독자가 주인공을 자신이라고 감정이입하며 읽기에 흡입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단다. 그러나, 낯선 2인칭 시점에 나는 당황했고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2장 검은 숨에서는 시점이 갑자기 1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군인 트력에 실린 시민들의 시체는 군부대에서 태워지고 있었다. 순간 주인공 동호가 죽었고, 동호의 영혼이 화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나'이고 동호의 육체는 '너'로 작가가 설정한 것인가? 순간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몸이 타들어가는 영혼은 동호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친구였다. 작가는 특유의 시적 언어로 타들어가는 시신과 이를 바라보는 영혼을 잔잔하게 묘사했다.
3장에 들어서자 시점은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익숙한 시점이라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게다가 이책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시기 도청에 남았던 동호라는 15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장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겪은 5.18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5.18의 주인공은 동호 한사람일 수 없었다.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5.18 민주화 운동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각장마다 주인공이 달랐다. 그에 따라 시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 한강의 탁월한 구성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3장은 이책의 하일라이트였다. 3장은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3장의 화자는 5.18 당시 도청에서 벗어나 병원에서 밤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5월의 학살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깊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어야만했다. 이러한 그녀의 심정을 연극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루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루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100쪽)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노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101쪽)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102~103쪽)
이후 4장부터 6장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는 자들이었다. 그 고통을 참아내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우리가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서 그들을 편히 보내고 남은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례이다. 5월 광주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 지인들은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5월이 슬플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리라...
저자 한강은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서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쓰게된 동기와 그 과정을 적었다. 여린 감성의 한강은 5.18관련 자료를 읽으며 악몽에 휩싸인다. 저자 스스로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전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옆에서 보거나 듣다보면 그의 고통을 상담자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 5.18의 기록을 읽으며 그녀는 그 때의 고통에 전이되었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많은 독자도 그 고통이 전이되었다고 토로한다. 그 고통을 함께 느낄때, 우리 모두는 5.18의 장례식을 치룰 수 있다. 그럴때 살아남은자의 고통을 겪는 이들도 인생의 장례식을 마칠 수 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어리석은 시위를 하는 이들도 함께 이 책을 읽고 5.18의 장례식에 함께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슬픔은 모두가 애도해야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