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트 대위와 김구면담)
비밀 보고, 1945년 4월 3일
1945년 4월 3일 아침, 본인은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주석과 약 30분간 면담했습니다. 이 면담은 본인이 전혀 요청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었습니다.
얼마 전 본인이 군사 관련 업무로 임시정부 본부를 방문했을 때제의를 했었는데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면담은 응접- P46
김구 주석과 대담하는 동안 한국광복군 이청천 총사령관, 광복군 2지대장 이범석 장군, 최근 조직되어 안휘성 부양에서 주둔 중인 광복군 3지대장 김학규 소장 그리고 통역 정한범이 배석했습니다. 김구 주석은 평범한 중국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응접실에들어왔으며 몸이 불편해 잠시 쉬고 있었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구 주석은 외모나 몸가짐에서 건강하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품격 있어 보였고 절제와 점잖음을 갖춘가운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가 25년 동안 애국적 자객이- P47
자 테러리스트였다는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대담은 대부분 덕담을 나누는 수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김 주석은 미국의 관심에 감사한다고 말하고(제가 이범석 장군과 관계를 이어온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어 전면적인 협력을 할 의향이 있으며특히 최근 안휘성 부양에서 막 도착한 37명의 한국인을 포함해(광복군)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본인은 일반적인 동맹국 간 공유하는 가치와는 다르게 한국과의사이에서는 보다 각별한 가치를 공유해야만 한국-미국 공조를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담하는 가운데 김구 주석은 두개의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1. 김구 주석은 이범석 장군과 본인 사이에 발전되어온 관계에 대해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양인과의 관계에서 싹튼 모든것을 승인했다고 말했습니다.
2. 그는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섬에 진격할 때 필리핀 대통령 그리고 고위 관료들과 동행했는데 이는 필리핀 국민들로 하여금 마음에서 솟아나는 협력 정신으로 일본이 점령한 필리핀을 공격하는 미군을 돕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연합군이한국에 진격할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과 동행한다면 한국 민중들에게도 같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이와 같은 조치는 한국 민중들로 하여금 기꺼이 일본에 저항해 일어서게 하여 한국 내 미국의 작전을 지원하게 될 것으로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P48
비밀 전문 수신, 1945년 3월 30일발산: 곤명 헬리웰 대령수신: 중경 버드 중령싸전트 대위와 이범석이 토요일(31일) 중경에 도착한다.
뒤에 언급된 인물은 이글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니, 모든 예우- P51
를 다해 정중하게 맞아줄 것을요망한다. 이글프로젝트는 4월15일경 시작될 것이며 첩보 활동은 바로 그 뒤 절차대로 착수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P52
본인은 안휘에서 온 37명의 광복군 병사들로부터 강력한 인상을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지적이었으며 눈이 초롱초롱하고 열정에넘쳐 있었습니다. 군인 집단으로서 이들은 본인이 본 어떤 집단보다 지적 수준이 높아 보였고, 자질 역시 미국의 어떤 청년 장교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대부분은 대학 졸업자이고 몇몇은 소통 가능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중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인은 이들 전원을 이글프로젝트에 투입해줄 것을 이범석 장군에게 요청했습니다.
(싸전트 대위 보고서)- P52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의 보좌역인 정한범 박사가 오늘 아침 나를 방문해, 김구 주석과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 조소앙 외교부 장관 3인이 웨드마이어 사령관을 면담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기를요청해왔습니다. 이들 모두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최고위 당국자들이며 워싱턴 주재 임시정부 대표가 보내온 전보를 받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전보에 따르면 웨드마이어 장군이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인을 활용하는 문제를 워싱턴에 있는 한국 관계자들과 논의했다는 것입니다. 언제가 괜찮을지 알려주면 본관이적절한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oss중국전구 부책임자 윌리스버드 중령이 미군사령부 윌리엄 맥아피 소령을통해전달)- P56
현재 우리가 교육하고 있는 한국광복군 요원 개개인에게는 많은정보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 미국 기간 요원들은 이들로부터 첩보를 얻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요원 가운데 50명은 지난해 한국또는 일본 점령지역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시간대에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 65퍼센트는 일본군에서 탈출했습니다. 이들이갖고 있는 온갖 종류의 전략적 · 전술적 정보의 가치는 엄청날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이들로부터 끌어내려면 현재의 제한된 미군의 인력으로는 매우 더딜 것입니다.
(싸전트 대위보고서)- P61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게 되면 일본과의대결에서 달성하게 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919년 한국혁명(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국 국내외에서 대일 파괴 활동과 게릴라전 등 갖가지 대일항전을 벌여왔습니다. 때문에 세계의 다른 어느국가들과 달리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조직은 혁명과 파괴 활동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도너반장군의 루즈벨트에게 건의한 임정승인 요구)- P107
수산: 러치 부인, 제국호텔, 도쿄
발산: 이승만, 워싱턴 DC. 1946년 12월 14일
이 전문을 러치 장군에게 건네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문병 드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장군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저희는 장군의 계획을 지지합니다. 입법의원을 지명한 것은 실책입니다. 한국 국민은 그들을 직접 선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 사령관이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하겠다고 고집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좌익 입법의원들은 입법을 방해하고국민을 분열시킬 것이며 그 결과는 비참할 것입니다. 하지 사령관에게 제발 좌우합작 노력 중단을 명령하라고 조언하십시오.- P224
하지 사령관은 미국 점령지역인 남한에서 온건우파와 온건좌파의정당 간 합작을 구축하고 과도입법회의를 구성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에 따라 실행해야 하는 자치정부 수립의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한국 국민의 다수는 현실을 보다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좌우합작은 지난해 10월 초 발표되었으며 지난 12월 과도입법의원 구성을 위한 선거가 치뤄졌습니다.
-1947.1.3. CIG 가 트루만에게 제출한 한곡의 실태 보고서- P229
경찰이 정치에 개입해 선호하는 한 편을 지원하고 다른 편을 가해한다면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한국 경찰들이 목전에서 벌어지는 테러를 못 본 척하고, 실제 테러를 저지르지 않고 있다며 테러단체들을 묵인하고 있는 사례들을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불안과 미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좌우합작위원회의 계획도실현될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 한국 경제는 친일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친일파 처리에 관한 법이 법제화되어 시행되지 않는 한 조국을 위해헌신할 애국적인 한국인은 없을 것입니다. 또다시 말씀드리지만경찰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야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습니다.
-미군정 정치고문 로버트 키니의 정책 보고서- P258
동아일보 1960. 2.17.
청천벽력의 비보에 전 국민은 경악
꿈속에 사라진 지도자, 야릇한 운명만을 원망또 한 사람의 자유수호자가 이 땅에서 사라졌다. 민주당 대통령입후보자 유석 조병옥 박사의 급서를 알리는 외전은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던 이 땅의 백성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대 비보였다. 하늘이 무너진 듯 땅이 꺼진 듯한 이 비보를 들은 국민들은 4년 전 해공 신익희 선생의 부보에 접했던 놀라움보다 더 큰경악과 실망을 맛본 듯했다. 수술을 받고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고- P554
국에 돌아오면 민주투쟁에 감연히 나서 옥쇄도 불사하겠다던 조박사. (중략) 그를 이 나라 유일의 민주주의 수호자로 아끼고 우러렀던 학자 그리고 이름 없는 시정인(人)에 이르기까지, 기구한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그의 급서 비보에 여며 그지없이 슬퍼했다.- P555
2018년 1월 16일 <연합뉴스>
강북구청, 제주 4.3 민간인 학살책임 조병옥 흉상 건립 철회
서울 강북구청이 추진하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 흉상 건립사업에서 제주 4.3 민간인 학살 주요 책임자로 알려진 조병옥을제외하기로 했다. 제주 4.3 희생자유족회와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강북구청이 각계와 내부 의견 수렴을 거쳐 이같이 결정·통보해왔다고 16일 밝혔다.
제주 4.3 단체들은 조병옥 흉상 건립을 제외해달라고 그간 성명을 냈고 지난 10일에는 박겸수 강북구청장을 만나 해당 사업에서조병옥 흉상 건립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강북구청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명예를 선양하고 역사의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여운형, 신익희, 손병희, 이준 등의 흉상을 건립하기로 했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병옥은 1947년 3·1절 기념 대회 도중 발생한 민간인 대상 발포사건으로 시작된 대규모 학살 당시 경찰 지휘 책임자 중 1명이다.
고성식 기자(제주 <연합뉴스>>- P556
여순사건이 발생한 사흘 뒤인 1948년 10월 22일 미군정 G-2정보보고는 그날 오전 10시부터 11시 15분까지 실시한 항공 정찰 내용을 기록했다.
5명에서 10명 규모로 그룹을 이룬 사람들이 여수 시내 곳곳을 오가는 장면이 목격되었습니다. 여수항에는 약 200명의 군중이 모여 집회를 갖고 있고 건물 위에는 적기가 걸려 있습니다. 여수 시내 번화가에서 각각 10명과 12명으로 보이는 두 그룹의 반란군들이 줄지어 행진하고 있었으며 교룡리에서 흰옷을 입고 북한기를 들고 있는 50명의 사람들이 마을을 벗어나 남쪽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순천 시내에서는 파란 제복을 입은 청년 150명이- P576
번화가에 집결해 있으며 5명의 무장한 군인들 두 팀이 제각기 1열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순천역에 4개 소대로 짐작되는 약 200명의 전원 무장한 반란군들이 집결해 있습니다. 또 다른 200명의 병력들이 역과 철로 사이에 앉아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객차 8량을 단 기차가 보이는데 기관차 2량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천 시내 건물 곳곳에 북한기가 날리고 있고 어떤 집 마당에는 모두 흰옷 차림의 시체 5구가 목격되었습니다. 구례에서는 정부에 충성하는 국군 병력를 태운 차량 행렬이 막 남원 방향에서 구례에 도착했고, 구례 시내는조용합니다.- P578
10월 27일 오후 2시경 1,500명에서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3개의 그룹으로 분리되어 각각 국방경비대의 경계 아래 억류되어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들은 반란군을 도운 혐의를 받는자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방경비대의 감시를 받으며 붙잡혀 있는 사람 중에는 반란군들에게 도움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된 것으로보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관련조차 안 되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붙잡혀 있는 1,500에서 2,000명이 반란군 포로들이라는 것은 도무지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P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