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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의 한적한 하루
  •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 김재명
  • 19,800원 (10%1,100)
  • 2019-05-10
  • : 1,473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핍박을 받았으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드디어 신께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했다!!' 소년 시절, 탈무드를 읽으며 이스라엘인들을 응원했다. "땅 없는 민족에게 주인 없는 땅을"이라는 테오도르 헤르츨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주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더라도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불렛셋이라는 팔레스타인 선주민이 있었다. 2천년 후, 유대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에도 그 땅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땅의 주인을 몰아내고 학살했다. 그러면서 성서에 기록된 약속의 땅이라는 점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인종 청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인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바라본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담은 책이다. 


1. 악마와 싸운 그들이 악마가 되었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악마와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악마가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악마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히틀러라는 악마와 싸운 유대인들은 히틀러와 싸우며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히틀러도 유대인의 심연을 들여다 보았다. 결국, 유대인들은 히틀러를 닮아가지는 않았을까? 이 책에서 이 물움에 대답을 찾아보자.

  1948년 5월 14일 나크바라는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이르군, 하가나 같은 이스라엘 민병대가 팔레스타인을 학살했다. 그들을 패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피난을 떠나야했다. 그들의 손에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열쇠와 집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중동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은 패배했고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아랍국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만들어 독립전쟁을 했다. 마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수시로 강을 건너 국내 진공 작전을 수행한 것과 비슷한 활동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도 전개했다. 

  그런데, 1982년 9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믿고 철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브라, 사틸라 난민촌을 에워싸고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수 있도록 아리엘 샤론의 명령에 따라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았다. 마치 청산리 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그 분풀이로 간도의 조선인 동포를 학살한 간도참변 처럼 말이다. 전시라 할지라도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이다. 그런데, 아리엘 사론은 "나를 괴물이나 학살자로 불러도 좋습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 나치 국가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죽은 성자보다는 그게 낫습니다."(121쪽)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리엘 샤론의 말처럼 그들은 유대인 나치국가가되어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했었던 만행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고 있었다. 악마와 싸우며 악마가 되어 약자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그들의 섬뜩한 모습에 히틀러는 지옥에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에 이스라엘군이 주둔하면서 식민지배를 한다. 이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제1차 인티파다 시기에 그들이 가진 것은 돌밖에 없었다. 일제의 무단 통치에 대항해서 우리가 3.1 운동을 했듯이, 그들은 인티파다를 전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아리엘 샤론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철수시킨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필요시마다 가자지구를 F16 전투기로 폭격했다. 

  2009년 저자 김재명은 가지구를 방문했다. 그 때 팔레스타인 주민은 "우리가 하마스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싸운 전투원이 아닌데, 왜 마구잡이로 폭격해 집을 부수고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가느냐?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76쪽)며 울분을 토했다.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겠다며 불도저로 올리브 농장을 밀어붙이고, 응급차의 마을 진입을 막고, 부모의 주검 옆에서 굶주리는 아이 4명을 나흘이나 내버려둔 이스라엘군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제거해야할 블렛셋인들로 보였던 것인가?

  이스라엘군의 정신상태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스라엘 군인이 단체로 티셔츠를 맞추었다. 그런데 그 티셔처에 인간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팔레스타인 임산부 배에 총으로 조준을 을 해 놓고는 "1 shot 2 kills"라 적어 놓은 것이다. 1발로 2명을 죽인다는 섬뜩한 글귀를 적은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입고 sns에 자랑하며 올린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이러한 사실을 유엔도 알고 있다. 2009년 3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라디카 쿠마라와미는 제10차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지지구 침공 당시 11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을 '인간방패'로 활용하는등 많은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101쪽)는 내용의 43쪽 보고서를 제출했다. 임산부와 배속의 태아에게도 총을 조준하며 "1 shot 2 kills"을 외쳤을 그들에게 팔레스타인 소년들은 인간 방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노에도 거칠 것이 없다. "UN 마크가 뚜렷이 달려 있는데도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소속 직원의 차량이 부서졌고, 난민촌은 파괴되고, 점령지역 민간인은 강제로 이동당했다. 이는 제네바 조약 규정 위반이며 명백한 전쟁범죄이다.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에게는 미국이 있다. UN에서 미국은 거부권이라는 무기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눈감아 주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국익보다 이스라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외교를 지적했다. 유대인은 유대인 로비단체를 이용해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반유대 정서를 확산시키는 일등 공신은 이스라엘일지도 모른다. 


2.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슬람 지식인은 저자 김재명에게 "이스라엘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내 민족만 잘났다고 타민족을 압살해선 안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기는 커녕, 나치의 악랄한 수법을 그대로 배워 중동땅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211쪽)고 토로했다. 히틀러의 수제자가 이스라엘이라는 그의 지적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구약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약속 받았으며, 고통이 끝나고 약속의 땅으로 그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했다는 그들의 신화는 진실일까?

  저자 김재명은 아서 쾨스틀러의 '열세번째 지파'라는 책을 인용해서 이스라엘의 신화를 걷어낸다. 현대 유대인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740년 무렵 카자르 왕국의 불란왕이 유대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탄생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독일 히틀러에 의해서 희생당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로마에 의해서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화를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을 박해하고 학살하고 있다. 

  그뿐아니다. 유대인은 동유럽에 분포한 아슈케나짐, 스페인을 중심으로 분포한 세파르딤, 이슬람인들과 조화롭게 지낸 미즈라힘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미즈라힘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박노자 교수의 '하얀 가면의 제국'이라는 책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은 로마에 의해서 디아스포라의 고통, 히틀러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거쳐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슬람인들과 이웃하며 조화롭게 살았던 미즈라힘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고한다. 조화롭게 더불어 살았던 역사를 버리고 박해받았던 고통의 역사를 모든 유대인의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피의 복수가 벌어질 수밖에.....

  이러한 이스라엘의 박해의 기억은 이스라엘을 제대로된 민주국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갖은 21%는 아랍인이다. 그들은 병역을 면제 당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어렵다. 취업해도 똑같은 일을 하는 유대인 입사 동기와 임금 및 승진에 차별을 받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또한 유대인 사회 내에서도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이 존재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1등 시민 유대인과, 2등 시민 아랍인, 그리고 죽여도 비난받지 않는 호모사케르보다 못한 팔레스타인인으로 구성된 비민주적인 국가이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의해서 강제 점령당하고 있다. 곳곳에 검문소가 있고, 서안지구 내에 분리장벽이 존재한다. 땅의 주인이 자신의 땅에서 죄수 취급을 당하고 있다. 불법 정착촌 사람들이 달리는 차에 돌을 던져 팔레스타인인을 위험을 빠뜨리고, 이스라엘군이 난민촌에 총을 쏘아 댄다. 팔레스타인인이 저항하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며 감금한다. 랄프 쇤만은 '시오니즘의 숨은 역사'라는 책에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 순사가 독립운동가에게 했던 '성폭행과 전기고문'을 비롯한 악랄한 고문을 소개했다.(169쪽) 열악한 감옥에 인권을 유린하면서 감금당하는 팔레스타인이들에게서 우리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만행이 이스라엘에서는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저자 김재명은 이스라엘을 민주국가라기 보다는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라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이스라엘은 21세기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유일한 국가"(331쪽)임을 지적한다.김재명의 날카로운 지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스라엘은 아테나 보다는 스파르타에 가까운 나라이다. 스파르타도 그들 내에서는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리고 소수의 스파르타인이 반자유민인 페리오코이와 예속농민인 헬일로타이를 지배했다. 그리고 반란의 기미가 있는 건장한 청년들을 주기적으로 살해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고 지적한 김재명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이후 지금까지 '국가 비상 사태'아래 있지 않은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 동안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최소 1만 2600명이고 이스라엘 희생자는 1700명 가량이다. 사망자 비율로 따지면 유대인(이스라엘) 1명당 아랍인(팔레스타인) 7.4명 꼴이다."(33쪽) 이러한 사상자 비율은 일제의 의병 학살에 맞먹는 교환비율이다. 이는 전쟁이 아닌 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현재에도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한 유엔 차량을 폭격하고 난민촌을 폭격하고 있다. 전기가 끊겨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이들이 침대에 눞혀져야만 했다. 2014년 프란시스코 교황이 세월호 가족을 만났을 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15쪽)이라는 말을 했다. 저자 김재명은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 악과 선 사이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중립이 정의가 될 수 없다. 일제에 대항한 우리의 의병투쟁과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오버랩되기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우슈비츠의 피해자였기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들은 용서 받는 것인가? 히틀러의 뒤에 서서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동을 이제는 그만두어야한다. 그들이 인간적 양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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