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기다려
아이는 바닥에 빨간 점을 발견하고 엄마를 부른다. 하지만 엄마는 ‘잠깐만’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그때 엄마가 필요했을텐데 엄마는 왜 아이에게 달려가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아이를 키우면서 ‘잠깐만’이라는 말을 많이 했던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아이는 그순간에 엄마가 필요했을텐데 필요할때는 잠깐만이라며 함께하지 못했고, 아이가 엄마 기다려라고 할때는 ‘빨리 빨리’라며 아이를 재촉했었다.
이제는 아이가 부를 때 바로 답할 수 있는데 아이는 다 커서 엄마를 부르지 않고 오히려 내가 아이들을 부르고 잠깐만 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카톡을 보내도 한참후에야 1이란 숫자가 사라지고 답이 온다. 아이에게 제대로 복수를 당하고 있다.
아이가 하나둘 셋하면서 엄마를 기다리는데 엄마는 열을 셀때까지 오지 않는다. 엄마에게 돌아오는 대답을 조금만 더 기다려였다. 함께 기다리고 있었던 대상들이 모두 떠날때까지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결국 엄마가 오고 아이는 엄마에게 열까지 세면 간다고 한다. 엄마는 숫자를 세면서 아이를 기다린다. 작가는 인생에서의 기다리는 순간을 아이와 엄마의 기다림과 다양한 대상들의 기다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말에서 책의 의미를 찾아본다.
‘삶은 대부분 기다림의 시간들입니다.’
저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상상의 시간이며, 놀이의 시간이며, 지루함의 시간이며, 희망과 행복의 시간입니다.
책에 나온 다양한 기다림중 나의 눈길을 잡은 기다림은 펭귄처럼 생긴 캐릭터가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내가 만나러갈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책을 보면서 내가 하면 되는 일을 기다리며 에너지를 낭비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전화하면 되는데 내가 만나러가면 되는데 아이들에게 오지 않는다며 서운함에 툴툴거렸던 쓸데없는 기다림의 순간. 내가 먼저 전화해서 그때는 미안했어라고 말하면 되는데 사과전화를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기다림의 순간.
기다리지 않고 내가 행동해야 하는 기다림도 있지만 열까지 천천히 세면서 상대가 준비될때까지 기다려 줄줄 아는 기다림도 있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기다림이다.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교수님은 시인이 되려고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가 어려워서 D와 F를 받고 8개월간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어렸을때는 구구단도 늦게 외웠다고 한다. 허준이 교수님의 부모님은 자식을 믿고 오랜시간 기다리셨을 것 같다. 그 기다림이 허준이교수님에게는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을 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조급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빨리빨리’를 외쳤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아이는 나를 잡아당기며 수없이 많이 ‘잠깐만 기다려’라고 했을텐데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는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으로 키우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지만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난 지금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희망과 행복의 시간으로 상상과 놀이의 시간으로 채워가는 법을 알았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