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번뇌의 대상이 아니라 수행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충고. “머리만 헛돈다”라고 라는 문장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구체적인 행동은 없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분별판단만 하면서 머릿속 스토리는 점점 자가증식을 하고 감정과 불만도 자가발전한다. ‘머릿속 감옥에 갇힌다’라는 표현은 자기만의 에고와 생각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느낌을 준다. 저자의 해법은 “마음과 몸이 완전히 일치해 맞물려 움직이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점점 충실감을 맛볼 수 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일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약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쩌면 명상일반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는데 모든 것을 ‘자기책임’으로 자기잘못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사회구조의 잘못은 없을까? 저자는 ‘가혹한 근무환경에 책임이 크다’라는 한 문장으로 끝낸다. 물론 잘못된 환경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관점이 궁극적으로 주체적인 자유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또하나 짚고 싶은 것은 근무시간에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음과 신체를 일치시키는 알아차림을 하는 게 생각외로 쉽지 않다는 게 나의 경험이다. 그건 아나빠나 사티를 해보면 안다. 눈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도 한 두 호흡을 넘기지 못하는데 심지어 일하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저자의 주장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에게 솔직하고, 지금 여기 이순간에 현전하며 일에 임하라’정도가 될 것 같다. 뭐 그러면 많은 일도 거뜬히 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해법이 너무 나이브하다는 느낌도 들 수 있지만 읽고 나면 마음에 평온함과 낙관적인 기분을 주는 미덕이 있다. “우리는 ‘마음의 작용’과 그를 통해서 나오는 ‘언어’, 나아가 ‘신체의 움직임’, 이 세 가지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마음의 안정을 잃게 되고 이 때문에 더욱 큰 번뇌가 생겨 괴로워진다. ”...“내가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언어의 내용 중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없다. 어디선가 읽었던 것을 생각 없이 주절거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내 자신의 체험 속에서 끌어내서 확실하게 실감했던 것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고 미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이 신체와 언어와 완전히 일치해 있는 상태여야만 우리는 최고의 충실감을 약속받을 수 있다.(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