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은 추상적인 단어 때문에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고, 차크라, 샥티 같은 용어가 등장해서 ‘스켑틱’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던져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 장점은 수행과 명상의 논리를 요즘 유행하는 ‘ABC’론처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차크라와 샥티가 맘에 안 들면 그 부분만 제껴놔도 좋다. 나머지 논리만 해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현실적이다. 다른 불교 명상가인 고엔카의 저서들에도 가장 중요한 개념이 아마 삼스카라, 상카라인데 외부의 감각의 좋고 나쁨에 집착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내면의 패턴이다. 이런 행동패턴 때문에 우리는 고통에 빠진다.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은 닥치는 게 세상만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논리에 인도 요가의 용어인 샥티같은 개념을 추가한다.(저자의 멘토는 암릿 데자이나 요가난다 같은 인도의 요기들이다.) 우리 같은 중생들의 피부에 와 닿게 현대물리학과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인용하며 ‘내려놓음’을 하라고 가르친다. 외부의 현실은 수십억년의 더께를 가진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호오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만하게 삶과 세상에 자신의 호오를 투사하며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서 기뻐하거나 슬퍼한다. 우리는 대개 외부의 조건을 성취하면 행복하리라고 믿지만 저자는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고 조건없는 내면의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저자가 그리는 ‘영혼의 지도’ 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적 인격, 자아라는 것은 삼스카라가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의 총체라는 것이다.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서구적인 느낌이라면 이런 호불호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터인데 저자에게 이런 인격은 ‘참나’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 삼스카라는 내면의 에너지인 삭티를 막는 장애물인데 우리가 ‘내려놓음’을 할수록 샥티의 에너지는 우리를 참나로 이끌어 우리는 조건없는 사랑과 평화,열정을 느낄 것이라는 게 저자의 구도다, 명상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한 두 번 들어봤을 ‘그저 지켜보기’, ‘내려놓음’같은 키워드는 여전하다. 흔히 명상에 따라붙는 비판 중 하나가 명상한다고 세상이 바뀌냐? 일 텐데 저자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개인적 반응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호오를 포기하면 인생을 사는 목적이 뭔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는데 저자에게 인생의 목적자체가 삼스카라를 제거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적인 삼스카라를 포기하면 조건없는 사랑과 열정, 창조성이 우리를 움직일 것이다. 사랑과 창조성의 특징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과 창조성으로 지금 눈 앞의 순간을 받들어 봉사하는 것이 저자가 바라는 삶의 표정이다. ‘깨달음 이후의 빨랫감’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고엔카의 위빠사나처럼 구체적인 매뉴얼이 안 나오는 것은 아쉬울 수 있다. 그래도 저자는 독자가 체감할 수 있게 여러 가지 표현으로 ‘내려놓음’과 ‘지켜보기’를 설명한다. 명상과 수행의 기본논리를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아 물론 이 책 읽는다고 해탈할 리는 없다. 나 같은 중생은 진짜 포기해야 돼? 하는 아쉬움부터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