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책은 왜 한국어판 제목이 따로 노는지 모르겠다. 원제는 <Living Between Worlds: Finding Personal Resilience in Changing Times>다. 굳이 오십이 아니라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 전형적인 예를 들자면 잘 다니던 대기업 퇴직하고 산티아고로 무작정 떠나는 사람? 들에게 빨리 떠나라고 뽐뿌질을 하는 책이다. 요즘 청년들 희망사항 1순위가 대기업이라는 게 약간 낯설다. 산티아고로 떠나는 게 더 이상 쿨하게 보이지 않나 보다. 예전 강신주 다상담 테마 중 하나가 진로문제, 회사문제였었는데(그 때는 대기업노예같은 뉘앙스였는데.) 요새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이라랄까,시대가 변했다. 뭐 그런 느낌이다. 홀리스 책에서 나오는 공통 테마는 이 책에서도 여전한데 다른 저서들에 비해 아마 가장 가독성이 좋고 내용도 알찬 거 같다. 번역도 괜찮다. 더군다나 심층심리학에 대한 소개도 하고 있어 맛보기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인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는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 사회적인 존재를 넘어서 “의미”를 찾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치겠지만 저자는 의미를 “혼”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의미의 정의가 뭐냐부터 논쟁이 될 수 있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분위기는 ‘자신이 더 큰 그림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다는 느낌, 삶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이다. 혼이 의미하는 것은 주술이나 무속이 아니라(영어로는 프시케다.) 무의식의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나(Self)’가 있다는 심층심리학의 인간상이다. 이 근본적인 나는 이미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꿈이나 신경증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우리는 이런 신호를 외면한다. 저자가 여기서 드는 주된 방어기제는 두려움과 무력감이다. 이런 면에서는 이 책의 주제는 아니타 무르자니의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산티)>와 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는데 아니타 무르자니는 에고와 더큰나를 구별하지 않는다. 반면 저자에게 에고는 더큰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명같은 느낌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명제는 기만적이다. 에고는 편한함, 익숙함, 안정을 원하지만 소명을 찾는 과정에서 에고는 고통을 느끼는 대신 의미를 찾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행복은 부산물처럼 다가올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조셉 캠벨의 “FOLLOW YOUR BLISS”의 심층심리학 버전이다. 캠벨은 자신의 인생사를 예를 들며 자신만의 블리스를 쫓아간다면 삶은 저절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화와 인생,갈라파고스)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다이몬이 있으며 내면의 메시지, 개인적 권위를 신뢰하라고 말한다. 아마도 프로이트가 융과 결별한 이유가 이런 신비적요소 때문이 아니었을까. 30대에 캠벨의 말을 듣고 그럴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건 래퍼런스였지 그 말을 적극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다이몬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나? 내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하면 그건 오만때문이라고 퉁칠 수 있다는게 문제다. 뭐 어쨌든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자신만의 주사위를 굴리라고 말하는 책이다. 읽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 답답한 기분이 사라진다. 물론 실천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