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얻은 팁 중에 하나가 "직관을 믿으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대안이 이성적 또는 합리적으로 보이더라도 "몸이 거부한다면" 다시 재고해 보라는 것이다. <블링크>(말콤 글래드웰)의 직관부터 철학쪽으로는 니체가 "몸이성"을 언급한 적이 있고,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다른(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자기계발서가 기억난다. 장의 신경세포가 어쩌구 하면서 장이 제2의뇌 블라블라가 근거였다. (물론 안티테제도 만만찮다. 그냥 우연과 주관적 느낌을 자기중심적으로 과잉해석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와 숫자로 의사결정을 하라는 얘기다. 이들의 무기는 통계학과 확률론이다. ) 히라노 게이치로 마냥 나도 남이 좋다고 하면 한번씩은 따라해 보는 편이라(<책을 읽는 방법>,문학동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고 노력한 적이 있다. 하지만, 헷갈리는게 이게 정말 내 안의 '위대한 나'가 내는 목소리인지 사탄의 목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 선생님의 바가와드 기타의 강의를 듣던 중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선생님 답변인 즉슨 "대부분 에고의 목소리에요. '내면작업'같은 거 먼저 해 보세요"
이 책은 융의 "영혼의 지도"를 바탕으로 해서 1부 꿈작업 2부 적극적 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핵심은 무의식,전일성이다. 저자는 현대인이 겪는 파편화, 무의미는 의식이 무의식과 단절된 결과이며 꿈과 적극적 명상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라고 한다.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결국 우리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다는 뜻이며 의식이 하는 일은 무의식이 한 일을 나중에 합리화하는 것이다. 꿈이 그냥 뇌의 전기신호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저자는 우리 안에 각자의 힘을 가진 다양한 자율적인 주체들이 있으며 그들의 역학관계가 보내는 신호가 꿈이라고 한다. 즉 돼지꿈 꾼 후에 우리가 보통 찾아보는 인터넷 해몽이 삽질이라는 것이다. 꿈에 원형적인 이미지가 나올 때조차 개인적인 연결점을 찾아야 한다. 적극적 명상은 우리가 하는 수동적 환상-멍때림 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환상에 참여해서 상상 속의 인물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무슨 애들 장난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은 절대 상상으로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예전에 글쓰기 선생님이 글에는 자신의 인격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굳이 융의 '영혼의 지도'를 백그라운드로 깔지 않더라도 자신(저자 입장에서는 자신 안의 다른 인격)과의 대화를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자신을 파악하는 하나의 기법이 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상상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 무의식의 ‘파묘’는 험한 것을 나오게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오컬트 의식 수행하는 것 마냥 적극적 명상 중의 주의사항을 이건 절대 하면 안돼,하고 알려준다. 무의식의 체험은 마치 라캉의 정신분석이 겉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지만 무의식을 '갱신'시키는 것처럼(<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가타오카 이치타케,이학사)) 깊은 곳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 동력 등을 재배치할 것이다. 한 권이 통째로 자기계발서이지만 쌈마이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다.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내면작업을 진행하는 방법을 서술하는데 지루하다거나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야기꾼의 솜씨이거나 융심리학이 가지고 있는 초월성 때문일 것이다. 반면 ‘회의주의자’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저자는 마치 ‘인드라망’처럼 무의식의 통합을 이룬 사람은 그 자체로 무의식을 통해서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고 서술한다. 깨달은 사람이 깨달았다는 그 자체만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승불교적(?) 논리가 연상된다. 이 한 권으로 내면작업을 독학으로 할 수 있을까?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약간 무리고 옆에 두고 계속 참고를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뭐 저자 입장에서는 이 책이 마중물이 돼서 심리상담까지 가기를 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