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심층심리학 서적이다. 이 책도 다른 융심리학 서적처럼 안정감과 위안을 준다. 고대에는 소년이 성인이 되는 입문의식이 있었지만, 전통과 의례가 사라진 ‘개인의 시대’에서 미성숙한 남성성이 유해한 영향을 세계에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입문의식이 사라진 게 비록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소년은 남성이 될 책임이 있다. 지금 소년은 전통과 의례에 기대지 않고 각자 성숙한 남성이 되어야 한다. (이건 마케팅이겠지. 그러니까 자기들 책 사 보고 자기들한테 상담해라,이런 거) 소년의 특징은 무엇일까? 긍정적인 면으로는 익살스러움, 즐거움,활기 등 이겠지만 이 책에서 드는 성장하지 못하고 흑화한 소년의 특징은 가학성,수동성,무력함,통제욕 등이다. 일단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집단무의식이나 원형같은 융심리학의 기본전제를 깔고 소년의 원형을 신성한, 조숙한, 오이디푸스,영웅적인 아이원형으로 나눈 후 이들의 특성과 이들이 흑화할 때 어떻게 변하는지를 각각의 버전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소년의 원형이 성장한다면 왕, 전사, 연인, 마법사가 되는데 역시 이 성숙한 남성의 원형도 흑화한다면 다른 버전으로 바뀔 수 있다. (왜 흑화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까지는 안 나온다.) 각각의 원형을 서술할 때 저자들의 통찰이 곁들이지면서 각 원형의 설명을 돕는다. 가부장제하에서의 남성은 아이인가? 저자는 가부장제를 ’소년지배사회‘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가부장제의 특징은 여성성과 진정한 남성성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 것이고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연약한 소년심리에 근거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가학성, 폭력성이 과도한 남성성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여성성에 압도된 결과라고 저자가 진단한다는 것이다. (<페니스 파시즘>(강준만외, 개마고원)도 이 메카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소년이 성숙한 남성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형은 영웅 원형이다. 영웅원형은 소년이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고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또 다른 심층심리학자인 로버트 존슨은 소년기의 중요과제가 ’마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한다.(<내 안의 여성성 마주하기>로버트 A 존슨, 동연) 이는 패배하고 싶은 욕망이고, 라캉이라면 죽음충동이라고 불렀을 법한 욕망이다. 다시 자궁으로 돌아가 돌봄받고 싶은 욕망이고 중세 신화에서 용과의 전투로 상징될 만큼 처절한 전쟁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싸우던 영웅(소년심리)은 죽음을 맞이하고, 초월적인 목표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며 겸손을 아는 남성성이 탄생하게 된다. 성숙한 남성성인 왕,전사,마법사,연인은 ’힘을 가진 자비로운 사람‘이미지다. 그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성장하도록 조력하는 왕국의 규율자이고, 수호자이며 타인과 공감하는 연인이다. 그는 내면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목표를 위해 고통을 견딜 만큼 강하고, 자신의 감정에 지배되지 않을 만큼 지혜롭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소년이 남성성으로 성숙되는 과정은 거창해서 벅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에고의 죽음이 소년을 남성으로 이끈다는 것인데 이는 불교식으로 하면 해탈 개념 아닌가. 뭐 옛날에는 이런 어른들이 많이 있었다고 저자들이 개탄하니 할 말은 없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원형과 그 흑화버전을 주변사람들에게 대입해 봐도 재미있을 것같다. 예를 들면 ’신성한 아이‘ 흑화 버전인 ’소년 폭군‘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직장상사 이미지 아닌가?(아니 나만 커리어를 바닥으로 찍은건가? 나이 많은 부장,팀장님이 어린 여직원에게 놀아줘 놀아줘 하면서 과외의 업무를 맡기지 말자. 손만 안 댔다 뿐이지 그것 역시 부당한 짓이다. 격노는 겁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수괴‘님도 이 버전이 아닐까 짐작한다.)
몇 가지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마루야마 겐지였는지 나카지마 요시미치였는지 헷갈리는데 술에 취해 귀가한 직장인 가장을 아이 다루듯 하는 아내를 보고 일본 가정의 실상을 알게 됐다는 외국인 이야기다. 언젠가 강신주씨가 강의 중 한 이야기인데 등산하다 보면 일가족 단위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반응이 다르다고 한다. 부모가 어차피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남자아이는 기본적으로 힘들다고 뗑깡 모드로 들어가는데,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여자아이는 힘들어도 아닌 척 애교를 부린다는 것이다. 예전에 50대 여사님들과의 대화에 낀 적이 있는데 그 여사님 왈 자기 남편이 괜한 고집피우고 삐지는게 둘째 아들과 똑같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나. 그 말 듣던 다른 여사님 왈 “이제야 그걸 아셨어요.” 그렇다고 또 발끈할 필요는 없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남성성이 (아마도 페미니즘에 의해) 부당하게 공격받았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딱히 태어나면서부터 성숙하거나 책임감이 있는 건 아니라고.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은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여성들을 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고 한다. 책은 성숙한 원형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마무리되는데 능동적 심상화,주문걸기, 롤모델 존경하기,원형처럼 행동하기이다. 능동적 심상화는 로버트 존슨의 <내면작업>(동연) 과 비슷하고, 다른 방법은 일종의 자기암시를 세련되게 만든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다른 심층심리학 서적처럼 비슷한 장단점이 느껴진다. 읽을 때는 위안이 되고 마음을 가라앉히지만 읽고 나면 정작 ’건더기‘는 많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마 마지막 해법에 좀 더 저자들이 힘을 줬다면 달라졌겠지만 그러면 이 책은 자기계발서에 더 가까워 졌을 것이고, 여타의 다른 영성자기계발 서적처럼 왠만해서 삶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읽고 나서 어떻게 이 책의 지침을 따를지는 독자에게 달렸지만.) 한번 이들의 지침을 따른 후 삶이 정말로 달라졌는지 챌린지 같은 거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