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 선악은 없다. 만일 있다면 강한 자손을 남기는 것이 선이고, 멸종을 시키거나 약한 자손을 남기는 것은 악일뿐이다. 뻐꾸기는 14개의 알을 낳는다. 그러나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한 마리나 두 마리이다. 나머지는 태어난 지 2~3일째에 해야 하는 그어려운 사업에 실패해서 죽는 것이다. 그 어려운 사업을 해낸 강한새끼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뻐꾸기는 이렇게 해서 강한 자손을 유지해 왔다.
뻐꾸기 새끼의 이런 행동을 텔레비전에서는 ‘각인된 유전자가 시키는 업‘ 이라 해설했지만, 동물이나 식물이나 보다 강한 자손을 남기기 위해선 사람의 지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천재적인 지혜를- P192
발휘하고 있다. 뻐꾸기의 생태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람도 강한 생물이었다. 그 지혜에 의해 변형해 왔다. 그리고 지금, 뻐꾸기 새끼의 처절한 싸움에 반감을 느끼고 증오할 정도로 자연계의 섭리로부터 동떨어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튼튼함, 강인함.
대단한 생명력을 싫어하고 부드러움, 약함, 유약함만을 환영하는자연계의 이단아로 내려앉았다.
사람사는 사회에는 선악의 윤리가 있다. 지켜야 할 질서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무엇이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강해지라는 것이다. 그것도 이제부터가 아니라 ‘지금 당장‘ 말이다. 의식을 바꾸면 지금 당장 될 수 있다. 깨끗하게, 멋지게, 우아하게, 라는 의식을 버리고 ‘뻐꾸기처럼 용맹하게라는 의식으로 바꾸면 당신은 지금 당장 강자가 될 수 있다.
사람사는 사회 역시 사실은 적자생존이라는 자연계의 섭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민주적 의식을 지닌 매스컴이나 교육자들이 그것을 없애고 희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 진리는 변함없다.
살아남기 위해 당신은 강자가 되어야 한다. 강자란 자기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사람, 그 신념을 위해 무엇인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불안을 이겨내는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다.
당신은 뻐꾸기의 음흉함과 지혜에 놀랐을 것이다. 눈도 못뜬 새끼 삐꾸기가 하는 지독한 짓에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 강하게 산다는 건 이런 것임에 눈뜨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여직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P193
"뻐꾸기는 다른 새를 속입니다. 자기 알을 잃은 어미새 입장이 되어 보세요. 강한 자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도 뻐꾸기처럼 강해지라는 가르침에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처럼 능력 없는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빨리 사라지라는뜻인가요? 자연계의 약육강식은 표면상만 그럴 뿐 사실은 공존공영으로 성립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사람들은 평화롭게 사이좋게살아가는 게 이상적입니다. 약한 자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며 이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지도자는 아무리 강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거나 지지를받지 못합니다."
경영자 의식과 직원 의식의 차이를 다시금 절실하게 느꼈다. 부드러운 것밖에 먹어보지 못한 입에 단단한 것은 이물질로 느껴지는것이다. 아무리 맛있다고 말해 줘도 토해 낸다. 삐꾸기 따위 새는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음이받아들일 수 없는 이물질인 것이다. 이것이 이물질이 되지 않게 하려면, 다시 말해서 입을 통해 뱃속에 들어가게 하려면 비참한 체험을 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전쟁에 져서 나라가 없어지거나난민이 되어 불모의 땅을 방황하든, 실업자가 되든 말이다.
또, 회사에 전 재산을 털어 넣었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영자 역시 필사적이 된다는 점에서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도 굶주림도 모르는 사람, 패배의 비참함을 모르는 사람, 평화로운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 언제나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고 있는 약한 사람은 뻐꾸기를 부정할 것이다-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