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계는 자아의 영역이며 감각에 대한 지각,동일시 그리고 통일성에 대한 환영적인 감각으로 구성된 언어 이전의 영역이다. 상상계의 일차적 관계는 자신의 신체, 즉 신체와 거울상 자체와의 관계이다....거울단계에서 느끼게 되는 근원적 통일성과 연속성의 감각은 환영적인 것이므로 자와와 관련된 근본적인 부조화가 존재한다....요약하면 상상계는 동일시와 거울상의 영역이며 왜곡과 환영의 영역이다. 이것은 자아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상상계적 통일성과 연속성을 얻고자 하는 무모한 투쟁이 일어나는 영역이다.
라캉이 어려운 이유
① 라캉의 생각 자체가 시간이 흐르며 변한다.
② 라캉은 개념을 순수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마치 시어처럼. 은유. 환유
심지어는 무의식이 쓴다, 라고 말한다. 모순적인 논리,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의견이 분분한 면은 니체를 떠올리게 한다.
③ 설레발치는 의사들에게 경고 차원에서 일부러 어렵게 썼다.
(핑계일 가능성이 있다)
④ 철학 등 인접한 의문의 개념들을 슬쩍 비틀어서 이용한다.
=> 라캉도 본인이 무슨 말 하는지 몰랐던게 아닐까?
에끄리를 전부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전재산을 줄 용의도 있다는 말. ”상상계“라는 폐쇄적인 느낌이 번역보다 ”상상적인 것“이라는 번역이 더 나을 것이다. 주체안에는 상상적인 것과 상징적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후기: 거울을 보며 파편화된 신체의 감각에서 가상의 통일된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 한다는 논리(이 과정에서 소외가 발생한다.) 는 자아는 오온의 가합일 뿐이라는 불교의 무아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추가적인 질문: 상상계, 즉 환영인 이미지가 현실적으로 함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엔카의 법문 중에서 들은 말. -우리는 황금궁전 안에 우리의 이미지를 모셔둔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상처받으면 괴로워한다. 그 이미지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보통 평판이라는 것을 신경쓴다. 그런데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환영에 집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일까?(라캉은 소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환영이라고 해도 여러명이 믿게 되면 실재하게 되는 걸까? 마치 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