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독서교육에 관심이 있거나 독서와 문자,언어와 관련한 일반적인 교양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한다. 매뉴얼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는 아니고 뇌과학 관련해서 전문적인 부분도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만큼 깊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언어를 음소를 분절하고 그 분절된 음소를 인식되는 그림(문자)에 대응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시절, ‘we cannot learn language seperately’라고 말하던 외국인 강사가 기억난다.) ‘독서유전자 ’는 없다. 저자는 인류가 ‘뉴런재활용’을 통해 후천적으로 언어와 문자를 얻었으며 신경과학적으로 독서하는 뇌가 혁신적 사고를 발생시키는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표의문자(중국어)보다 표음문자(알파벳)가 습득과 효율성 면에서 더 진화했다는 쪽인데 서구우월감?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글을 극찬하는 대목에서는 국뽕을 느낄 수도 있다. 대안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강의에서 류재화 선생님이 반복하는 말을 ‘텍스트 너머를 보라’는 것이다. 저자도 계속 문자를 단순히 해독하는 것과 깊이 있게 독해하는 것은 틀리다고 강조한다. 저자에게 독서는 몰입,추론,은유,시점 변화 등을 통해 자기를 떠나 다른 내면으로 ‘인지적 도약’을 이루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인지적 도약’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주면 좋겠지만 그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아마 독서계의 오랜 논쟁, 속독vs정독 이슈가 나올 것이다.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은 지금도 절찬 판매중이다.)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구술언어와 문자언어의 대립 이슈도 나온다. 저자는 구술언어에서 문자언어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나온 소크라테스의 우려가 문자언어에서 디지털매체로 넘어가는 현 시점에도 유효하다고 한다. 문자언어주의자인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우려에 동의하면서도 소크라테스가 문자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의 내면에서 구술언어처럼 ‘대화’가 이루어지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 자체가 바뀐다. 반어법, 발음, 은유, 시점 등 단어에 대하여 알고 있는 다양한 용법을 적용해 가시적 텍스트 너머를 보고 타인의 의식을 ‘내면화’하는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걱정과는 달리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독서에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몇밀리세컨드의 시간’이 있지만 디지털매체에는 오직 정보의 폭격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문자언어를 막지 못했 듯 우리도 디지털매체를 막지 못하겠지만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마 후속작 <다시, 책으로>(어크로스) 로 이어진다.) 저자가 묘사하는 독서는 텍스트와 독자의 인터액티브한 경험이다. 마치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처럼 읽을 때마다 고정된 텍스트에서 같은 의미가 인출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가 상호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지금 여기의 경험이다. 한 가지 딴지를 건다면 강유원이 <책과 세계>에서 말한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라고 말한 대목이다. 굳이 생동하는 현실을 버리고 책에서 간접경험을 쌓는 자는 병든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이 강유원이 독서를 근본적으로 비판한 건지 아니면 그냥 어깨뽕인 건지 알 수 없지만 저자가 칭송하는 ‘인지적 도약’이라는 것의 실체와 가치가 무엇인지 한 번 되짚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온화하고 친절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기분. 난독증 등 독서장애에 관한 분석과 대처도 있으니 품에 안긴 갓난아기를 바라보며 독서교육에 신경이 쓰인다면 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