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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킬러>(배리 마이어,소우주) 덕분에 옥시콘틴 사태를 알게 됐다. 덤으로 이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까지 보게 됐다. 얼핏 읽은 비평에는 이 다큐멘터리가 낸 골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옥시콘틴 반대 영화라고 하고, 앞에 한글판 제목에서 낸 골딘이라는 이름을 빼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비평도 봤다. 원 제목은 <ALL THE BEAUTY AND BLOODSHED>이다. 하지만, 뭐랄까 결국 낸 골딘의 삶이 주는 매력이 옥시콘틴 반대 운동과 묘하게 연결되는, 그래서 낸 골딘의 삶과 옥시콘틴 반대운동이 병치되면서 전혀 다른 하모니가 연출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앞에 낸 골딘이라는 이름을 붙인 한국어판 제목이 오히려 적절한 것 같다. 감독이 <시티즌포>도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 부럽다. 어찌 이런 능력이 있을까. 뭐 이쯤 되면 연타석 만루홈런 아닌가. 낸 골딘의 삶을 보니  '노빠꾸 할머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로워 뉴욕','그리니치 빌리지', ''존 워터스' 같은 단어에서 연상되는 분위기가 이 분 삶의 이미지로 느껴진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쉽게 쉽게 옥시콘틴 반대운동이 추진되는 것 같은데 설사 미술계의 유력인사라고 해도 자신의 커리어가 날라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분명히 있었을 테고 그게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그래도 할머니가 참 노빠꾸다. 마약한게 처음도 아닐텐데 아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독자가 되었다는 것, 새클러가가 타인의 고통을 악용해서 돈을 벌었다는 분노가 아마 그 동력이었을 거다. 당시 주류의 가치관은 생까버리고 성소수자 등 마이너들과 자신의 삶을 '축제'와 '서사'로 만들면서 살아온 삶이 인상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난감하고 마주치기 싫은 기억도 있다. 미국이 참 발전한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게  7,80년대에 벌써 이런 삶들이 있었구나 싶다. 얼마전에 본 <맨온와이어>도 비슷한 시기에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줄타기를 하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지만 어찌 그 시절이 호시절로 느껴지고 낭만이 있던 시절로 느껴진다. 난 그 시절을 보낸 적도 없는데 왜 그때가 그리운 걸까. 단 <페인킬러>를 읽고 나니 이 영화를 보고 자칫 옥시콘틴 사태를 정리하는데 낸 골딘만 그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일까 의구심이 든다. <페인킬러>를 보면 옥시콘틴 사태를 막기 위해 여러 사람이 노력을 했다. 그래도 새클러의 이름이 지워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들이 처벌받은 곳은 이 곳 뿐이야, 라는 대사에서는 낸 골딘의 위엄이 느껴진다. 낸 골딘은 자신의 반항의 원동력은 십대에 자살한 누나라고 얘기한다. 낸 골딘은 마초는 아니다. 하지만, 은근하게 깔린 단단함이 느껴진다. 자유와 반항과 혁명의 분위기와 마이웨이 정신을 느끼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ps. 1.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 영화 덕분에 새클러가의 면상(글자 그대로 면상이다.)은 영구박제되어 버렸다. 이 영화 자체가 새클러가에게 또 다른 처벌이 됐다. 만약 아카데미 상까지 받았다면?(이 영화는 장편다큐멘터리 부분에 노미네이트됐다.) 


2. 삽입된 음악이 귀에 감긴다. 자막에 표시된 뮤직 컨설턴트는 낸 골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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