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디 다닌다는 게 귀찮아서죠. 사실 여행을 하려면 많은 것을 계획해야 합니다. 그중에 가장 어려운 건 여행의 목적입니다. 왜 여행을 해야 하느냐. 이게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경험을 위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만으로 벅찹니다. 쉬기 위해? 집에서 쉬면 될 것을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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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 써가면서 밖에서 쉬고 싶지 않습니다. 경이로운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별로 당기지 않습니다.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나의 노력과 자원을 쓰는 게 와닿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저는 여행을 가지 않기 위해 수많은 핑계를 만들어 내면서 여행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가볼 만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도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방법 중 하나니까요. 처음 마음연결에서 이 책에 대한 서평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진 분야의 책이 아니었거든요. 여행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여행 에세이도 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분의 여행 장소는 저에게는 달나라만큼 생소한 남프랑스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사는데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나를 스스로 옥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보는 게 어쩌면 저를 새로운 길로 안내할 수 있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저처럼 제2의 인생을 준비하시는 중년의 마지막을 보내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분야 책에 대한 읽기와 서평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알지 못하는 저에게 과연 저자는 여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가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편하고 익숙한 여행지도 아닌 남프랑스로, 그것도 일을 하면서 하는 여행을 계획했다는 게 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곧 은퇴해야 할 정도의 분이 말이죠. 이런 궁금증에 저자는 이렇게 책에서 답을 적어놨습니다.
" 여행이란 익숙지 않은 곳에 자기를 데려다 놓음으로써
이제와는 다른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
상당히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답이었습니다. 내가 익숙한 환경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잘 압니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 직장에서는 상급자로 다른 모임에서는 모임 일원이라는 익숙한 모습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행을 함으로써 색다른 환경에서는 이방인으로서의 내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말이죠. 저자에게 이 여행은 내 안에 있는 이런 이방인의 모습을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즐기는 여행이 아닌 경험하는 여행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마치 깨달음을 원하는 구도자처럼 말이죠.
그렇게 선택한 여행 방법은 정말 생소했습니다. WWOOF는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칭으로, 유기 영농을 영위하는 전 세계 농부들의 Network 이자, 호스트와 여행자들이 일상의 삶을 나누고 문화를 교류하는 Exchange Platform이라고 합니다. 정말 세상에 없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도시화로 인해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살기 좋다는 유럽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그렇게 비워져가는 농촌에 이런 아이디어가 적용되었다는 겁니다. 참신하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우리나라에도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Travel differently, connect globally'이란 슬로건으로 새로운 여행 방법을 전파하는 Workaway는 WWOOF보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여행 및 문화교류 플랫폼입니다. 저자는 이 방법도 사용했습니다. 책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방식을 통해 여행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으로 인한 평안을 얻고 그리고 그 문화 속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으로는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안 가겠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개해 줘도 될 듯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하면 시인이 되나요? 저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상당히 낭만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깊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에르베라는 분의 집에서 그분이 집에 대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영혼과 육체에 불과 음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집이 아니다. "
집은 기본적으로 휴식의 공간입니다.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편하게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온기와 포만감을 줘야 합니다. 그로 인해 가족들과 화목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집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개념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투자의 개념입니다. 집을 가진다는 게 나의 자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겁니다. 문제는 이 개념이 기본적인 휴식의 공간이라는 점을 뛰어넘었다는 겁니다. 과연 지금 우리는 집에서 영혼은 편할까요?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에 대한 소유욕이 넘치면서 우리는 집에서 누려야 할 편안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는 영혼과 육체가 집에서 온전히 쉬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네요.
많은 호스트의 이야기들 있지만 가장 기억나는 건 도미니끄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다섯 살 때 프랑스에 입양된 분이셨습니다. 이런 애절한 사연이 저에게만 와닿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도 이 분에 대한 사연이 궁금해서인지 여행 코스를 수정해서라도 이 분을 만나보러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정말 멋지게 표현하셨습니다.
" 먼 옛날 이국에서 시작된, 다섯 살 어린아이의 외롭고 고단했던 삶의 파노라마가
한 조각씩 종이배로 접혀져, 닿을 곳 없는 지중해의 수평선을 향해 띄워지고 있었다. "
이런 시적 표현으로 인해 책을 읽는 재미와 감동이 더해졌습니다. 그 덕에 도미니끄와 저자와의 대화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덕에 마음의 문을 열었던 도미니끄는 자신의 어릴 적 신분증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 도미니끄는 낡은 신분증 하나를 가져와 수줍은 듯 웃으며 내게 내밀었다. 표지에는 '대한민국 단수여권'이라 쓰여 있었다. '박을용, 1970년 11월 14일 생, 신장 100센티미터, 여행 목적 : 입양'. 그것이 쓰인 내용의 전부였고, 그것이 그의 과거에 대한 기록의 전부였다. 부착된 사진에는 머리를 짧게 깎은 5살짜리 어린아이가 생년월일과 영문 이름이 쓰여 있는 표지를 가슴에 붙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
우리나라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입양아를 해외로 보낸 나라였습니다. 먹기 살기 힘들어서 버려진 아이들, 장애가 있다고 버려진 아이들, 이 아이들은 전 세계로 보내졌습니다. 예전에 빅 히트를 쳤던 영화 <국가대표>에서도 차헌태가 그런 입양아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문화도 언어도 생소한 그곳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도미니끄가 가졌던 신분증을 가지고 그렇게 보내졌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도미니끄는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그 신분증에 쓰인 자신의 이름도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여행 목적도요. 입양이라고 하지만 모국에서 버려지기 위해 여행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여행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나라로 가족들과 여행을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방문을 학수고대했다고 합니다. 저자를 통해 우리나라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요. 이런 인연은 단순히 호스트와 우퍼로의 관계가 아닌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간의 공감과 유대를 만들고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냅니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여행을 함으로써 얻었는데 이는 정말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저자의 여행기는 읽고 나니 저자는 정말 많은 행복을 얻었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은 결코 많은 것을 소유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내가 만족하고 마음이 편한 것이 행복입니다. 행복에 관해서 그의 여행 기간 중 만났던 알프스의 알린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아.
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수많은 물질적 풍요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남프랑스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환경을 가진 곳입니다. 사람들의 성향도 다릅니다. 당연히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는 행복에 관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개념이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개념보다 휠씬 행복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그래도 이 책을 읽은 덕에 행복에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라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저 역시도 저자의 책을 읽으며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알프스 목장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나온 것처럼 목동이 되어 보기도 하고, 프랑스 시골에서 농부가 되어보기도 하고요. 마치 일상 속에 들어간 구도자의 모습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고 할까요?
문득 전쟁사를 좋아하는 저도 저자와는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의 전적지를 실제로 돌아보고 싶다란 생각이 드네요. 저도 어느새 여행의 목적이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