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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나는 영화 [프리티 우먼]을 몹시 좋아한다. 못해도 열 번은 넘게 봤다.

간단하게 말하면 신분 상승을 다룬 신데렐라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에드워드가 비비안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되는 과정에 있다. 처음부터 사랑 이야기를 만들려고 시작한 영화도 아니었다. 로이 오비슨의 [프리티 우먼]이라는 노래를 듣고 각본이 나오면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아주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19금 영화였다. 붕가붕가 장면이 나와서가 아니다. 대사가 꽤 매웠다.

처음 제목은 [3000]이었다. 에드워드가 비비안과 일주일을 보내는 대가로 3,000달러를 주기 때문이다. 원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쁘게 끝나지도 않았다. 매춘과 마약 중독의 현실을 다룬 상당히 어두운 영화였다. 마지막에 에드워드는 비비안에게 돈 봉투를 던지고 떠난다. 비비안은 그 돈을 들고 디즈니랜드로 간다. 거기서 끝이었다.

그런데 디즈니가 제작권을 가지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게리 마샬 감독에게 로맨틱 코미디로 고쳐달라는 주문이 들어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리티 우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비비안과 에드워드 역도 처음부터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였던 게 아니다. 당시 줄리아 로버츠는 신인이었고 미셸 파이퍼, 킴 베이싱어 같은 톱 여배우들이 후보에 올랐다. 에드워드 역 역시 알 파치노, 워렌 비티, 케빈 코스트너에게 먼저 갔다. 모두 거절했다.

리처드 기어도 처음에는 에드워드가 너무 평범한 역할이라며 거절했다. 그런데 줄리아 로버츠가 메모지에 ‘Please say yes’라고 써서 그에게 건넸고, 결국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

영화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오페라 보거 전 보석함 상자를 열어주다 비비안이 손 대려 할 때 갑자기 뚜껑을 닫아 비비안이 큰 입으로 빵 터지는 장면은 리차드 기어의 애드리브이었는데 영화에 그대로 삽입되었다

그 목걸이도 그냥 그럴듯하게 만든 소품이 아니었다.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당시 가격이 250만 달러. 덕분에 촬영 내내 보석상 측에서 파견한 무장 경호원이 항시 대기였다.

그리고 록시트.

영화의 주제가를 부탁받았을 때 록시트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투어 중이었고 이런 코미디 영화에 넣을 노래를 새로 만들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표했던 [It Must Have Been Love]에 크리스마스[제목에도 러브 대신 크리스마스가 있었던 걸로 안다] 가사만 살짝 바꾸어서 영화를 위해 만들었고, 주제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 노래가 록시트의 가장 큰 히트곡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다.

나는 학창 시절 록시트의 [Joyride]를 듣고 좋아해서 용돈이 생길 때마다 앨범을 한 장씩 샀다. 집에 록시트 앨범도 여러 장 있다.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그때 정말 멋진 스타였다. 노래도 잘했고, 내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보컬 중 한 명이었다. https://youtu.be/kR6-FHgBVeY?si=bMk6AK5q-nNOpHvx


그런 그녀가 2002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투병에 들어간다.

노래를 얼마나 부르고 싶었으면 몸이 조금만 나아져도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시력이 악화되고 기억 장애까지 생겼다. 매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공연했다.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을 보면 전성기의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없다. 얼굴도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전성기의 그녀보다 투병 중이던 2012년 산티아고 공연을 더 좋아한다.

유튜브에 그 공연 풀 영상이 있다.

그곳의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예전과 다르다. 몸도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아니,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사람의 얼굴.

공연 중간에 [It Must Have Been Love]를 부른다. 객석의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부른다. 무대에 선 마리에와 객석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장면은 볼 때마다 뭉클하다.

이후 지팡이를 짚는 모습이 점점 많아졌고, 결국 마리 프레드릭슨은 201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나는 [프리티 우먼]을 볼 때마다 영화만 보는 게 아니다.

로이 오비슨의 노래가 떠오르고, 처음 제목이 [3000]이었던 시절의 어두운 이야기가 떠오르고,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이 역할을 맡게 된 과정도 생각난다. 보석함 뚜껑이 닫히던 순간도 생각난다. 무엇보다 영화 속 비비안 그 내면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록시트와 마리에 프레드릭슨.

전성기의 마리에가 노래하던 모습, 병을 얻고도 무대에 올라 노래하던 모습, 산티아고 공연에서 객석과 함께 [It Must Have Been Love]를 부르던 모습까지.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데 그 뒤에 있던 시간들이 필름처럼 촤르르 흘러간다.

그래서 [프리티 우먼]은 질리지 않고 잘 도 계속 본다. https://youtu.be/TKS5tUmTzdY?si=fxMjEvT3O5qCIa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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